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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르타주(reportage)
어떤 사회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가 자신의 식견을 배경으로 하여 심층취재하고 대상의 사이드 뉴스나 에피소드를 포함시켜 종합적인 기사로 완성하는 데서 비롯된 기록 문학.
작년에 <새로운 가난이 온다>,<나, 다니엘 브레이크>, <곁에 있다는 것> 만나면서 #인권 #부의불평등 #가난증명 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자본주의 체계를 생각해 보았기에 나에겐 새로운 서사 장르이기도 하고 #넷플릭스 에 드라마화되기도 한 주목받는 작품이라서 도전한 책이었다.
가난의 대물림,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아이러니와 미혼모, 싱글맘으로 살아야 하는 스테파니의 고됨과 인간 승리를 향해 한걸음 내딛는 모습. 그리고 고생의 행로는 계속 진행 중이라 아직도 마음 한 편 안쓰러움이 가득한 진행형이다. 아이 둘 키워본 입장에서 아이만 키우기도 힘든데 홀로 법정 투쟁과 자신의 증명, 학업, 생업을 위한 일자리까지 신경 써야만 하는 그녀의 악전고투가 힘겹게 느껴져서 몇 번이고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완독하는데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이유는, 비단 그녀의 고난의 길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스테파니가 들으면 페이스북 차단을 당할 발언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스테파니가 선택한 그 길에 안타깝지만 책임이 따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첫째, 드라마에는 스테파니가 처음 제이미를 만났던 때가 더 이르게 표현되지만, 르포에서는 28세 임신한것으로 나온다. 28세 정도면 자신의 미래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되는 시기라 생각한다. 모든 이에게 대학이 중요하진 않지만, 그녀의 꿈을 위해서는 전문대 진학도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막연하게 지낼 나이는 아니라고 본다. 화학적 끌림만으로 잠자리 상대와 미래의 배우자를 함부로 선택하거나 지속해서도 안되며,(깊은 관계는 어느 정도 준비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임신을 했다고 모두가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자기가 부모가 될 준비가 된 사람만이 부모가 되어야 모두의 불행을 조금이나마 막는다. (물론 뜻대로 되지는 않는게 인생이지만...)
둘째, 안타까운 말이지만, 그녀가는 강대국 중 하나인 미국에서 7가지 이상 사회 제도의 혜택을 받는다. (음식 쿠폰까지 합치면 거의 100만 원가량) 물론 스스로 가난을 증명해야 하며, 사람들의 뼈아픈 시선을 받아야 하지만, 그녀를 도와주려는 복지사들의 노고에 감사해야 한다. (실제로 정보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녀 또한 그 혜택을 받는 것에 그런 노력과 눈초리를 받을 수 있음을 인지해야만 할 것 같다. (중산층 납세자의 반응은 성숙하지 않지만, 정작 세금만 내고 혜택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억울함도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그녀의 모멸감은 안타깝지만....)
셋째, 그녀는 그녀가 일하는 가정을 <포르노 잡지를 보는 집>, <슬픔의 집>, <요리사의 집>, <맨발의 도둑 엄마네 집> 등 다양하게 명명한다.
"염탐은 단서를 발견하고, 모든 것을 갖춘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삶 이면의 증거를 찾는 작업과도 같았다. 경제적 여유, 대리석 세면대가 달린 욕실, 창문으로 바다가 내보이는 서재를 갖춘 이층집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그 사람들에게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나는 어두운 구석에 가려진 부분,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기 계발서의 이면에 매료되었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자신의 두려움을 숨길 수 있는 보다 긴 복도와 더 큰 벽장을 가지고 있을 뿐인 지도 모른다."(p 272)
그리고 그녀는 염탐이 아니라 했지만, 그녀의 보고서는 자기 힘듦의 보고인 동시에, 중산층의 염탐 보고서이다. 자신도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모르면서 자기에게 잘해준 주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그렇지 않은 주인에게는 별명조차 치욕이다. 그들의 삶을 관음 하면서 사회가 그녀를 깎아내리듯 그들을 발가벗기고 수치를 준다. 부럽지 않고 측은하다 한다. 그것이 그녀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끈이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녀의 이런 자세 등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이미데 대한 태도의 경우에도, '얼마나 좋은 아빠인지 보여주겠다며 미아가 기진맥진해질 데까지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기에 가끔씩 미아가 제이미를 찾으며 울면 가슴이 찢어지고 아프고 분노한다'고 한다. 만약 제이미가 미아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도움에 응하지 않거나,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면 더 힘들 상황을 차치한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고된 일상에 대한 질투나 꼬투리로 되비친다..
그리고, 외로움을 핑계로 트레비스를 선택하는 데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말대로 그녀가 #백인쓰레기 였기에 이런 르포가 이슈가 되지 않았을까 씁쓸한 생각을 해본다.(다른 인종이었다면... )
물론 그 와중에 그녀가 보인 더 나아지고자 하는 노력과 글을 쓰며 극복하려는 삶의 태도는 눈물겹고 진짜 존경스럽다. 그러나 일방적인 공감만 할 수 없는 조건들때문에 그녀의 삶에 응원을 하되, 크게 공감은 되지 않는 어떤 면이 있었다. 사람은 그 입장이 되어보지 못하면 알 수 없지만, 너무 힘들었던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내 맘도 한없이 힘들었던 독서 도전이었다.
이것이 르포의 묘미인 걸까, 내가 삐뚤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