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하는 프랑켄슈타인의 강렬한 이미지는 20세기 대중문화사에서 무한 재생산되었다.
1931년 할리우드 흑백 공포영화에 등장한 배우 보리스칼로프의 얼굴. 원작 상당 부분을 개작해 각색한 이 영화가 원작과 가장 다른 점은 괴물의 대사가 한 마디도 없었다는 것이다. 19세기 천재 여성작가 메리셸리의 능변의 괴물에게는 언어는 곧 생명과 같다. 너무나 유명해진 B급 영화로 인해 진정한 프랑켄슈타인이 조롱당했던 것이다.
메리셜리 19살 소녀의 경의로운 처녀작은 그녀를 '과학소설의 어머니'로 만들었다.
불안했던 그녀의 삶과 전형적인 여성의 역할을 중시했던 보수적인 19세기 사회에서의 비범한 지성과 작가로서의 야망은, 그녀를 남성 세계에 투신하지 못하고 무소속의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이야기에는 여러 목소리의 각기 다른 시선이 등장하는 듯하다. 이러한 파격적 이중 액자 형식은 프랑켄슈타인의 서사에 더욱 흥미를 유발한다. 번역가가 열 일 했는지 19세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촌스럽거나 고루하지 않은 매력적인 작품이다. 또한 문체가 유려하기까지 해서 상당히 놀랍다. 그러나 초판본을 번역했다는 걸 읽고 번역가의 능력도 출중했지만, 고전임에도 현대적 감각을 겸비한 대단한 작품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을 번역가는 상상력의 적자가 아닌 시인들이 홀대한 산문으로 낳은 사생아라 말한다. 신에게 도전하는 과학자의 과도한 야망은 작가나 예술가가 품는 창작의 불안을 투영하는 은유라고 보기도 한다. 한 가지 보람찬 일은,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내가 그동안 기억했던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가 보다 젠틀하고 고뇌에 찬 훈남형 괴물로 변신했다는 사실이다. 좀, 지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