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문화원을 방화한 이들이 그날 부산 시내에 뿌린 성명서는 다음과 같았다.
미국은 더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
우리 민중의 염원인 민주화·사회 개혁·통일을 실질적으로 거부하는 파쇼 군부 정권을 지원하여 민족 분단을 고정화시켰다. 이제 우리 민족의 장래는 우리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는 신명르 가지고, 이 땅에 판치는 미국 세력의 완전한 배제를 위한 반미 투쟁을 끊임없이 전개하자....(p 93)
82년에 미문화원을 방화한 이들이 반복한 88올림픽을 떠 올려보니 모두가 아는 성공적인 88올림픽은 실제로 모두가 보고 겪은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다른 누군가가 반복해서 만들어낸 다른 세계의 미래처럼 여겨졌다.(p97)
나를 둘러싼 어른들이 올바르고 불의를 외면하지 않는 어른이길 바랐다. 이제는 스스로 그러한 어른이 되는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숨을 잃은 이에게 참회하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p101)
윤미언니는 복학을 했고 아버지는 다시 취직되었다. 수미 가족은 울산으로 돌아갔고, 수미는 이제 많은 것들을 잊지 않고 모조리 기억하겟다는 생각을 점점 하지 않게 되었다. 수미는 앞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것을 뚜렷하게 보고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p104)
#다음에쓸것들
최명환은 내가 부산에서 처음 알게된, 가장 자주 만난 사람이며 집주인이다. 세례명 '마르타'는 음식을 차려주는 성녀를 뜻한다. 여상을 나와 미 문화원 근처 무역회사 경리를 하며 경제를 배우고 혼자서 돈을 모은 바람에 가족에게 미움을 샀다고 한다.
"나으 고민은 이대로 나의 인생이 변함없으리라는 것이예요.(p115)
나조차도 생각지 못한 나의 고민이 이웃집에서 새어난온다. 불륜, 범죄... 다음에 쓸것 목록이 채워져간다.
이 사람에게는 흐르고 있는 오늘의 지금의 시간을 물방울처럼 튕겨져 나가게 하는 자신 나름의 시간의 막이 있었고 그것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p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