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견인>
한 시간 반 전에 결혼한 낸시 홈스 라이언은, 결혼식과 첫날밤 사이의 기이한 연옥을 겪고 있었다.
21번째 생일을 맞은 남편 로버트 라이언 주니어는 키 크고 상냥하고 내향적인 MIT 공대생이다. 그는 유산을 많이 물려받은 어린 고아로, 그들이 케이프 코드로 가는 건 신혼여행 때문만 아닌, 자신의 유산을 스스로 관리하는 절차를 밟기 위해서다.
"그런 주장들은 그녀 영혼의 기반이 아니었다. 이 연옥이라는 혼란스러운 사실, 기혼자로서의 새 삶이 진정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니며,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최선을 다해 적응하고 있었다."(p 74)
로버트의 후견인 몽상가 찰리 삼촌은 여러 사업을 말아먹고 블라인드를 판매하는 알코올의존자이다. 로버트와 만나기로 한 애틀랜틱 하우스에서 찰리는 8년 만에 '버번 온더록스'를 시켰다.
"찰리는 극적인 순간에 술 한 잔을 마시려고 아주 오랫동안 벼르고 있었고, 이제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았다. 두려워 죽을 지경이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것만큼이나 무서운 시험이었다."(p 81)
후견인의 법적 의무가 끝난 순간을 자축하고자 한잔하는 순간에 맞닥뜨린 로버트의 결혼 소식에 당황한 찰리. 그러나 취한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언짢은 마음조차 숨겨야 하는 장면에서 웃픈 보니것식 유머가 묻어난다.
<스로틀에 손을 얹고>
얼 해리슨은 콤플렉스를 뛰어넘은 30대 세력 확장 가이다. 좋은 위스키, 시가, 열차 모형을 제외하고 스파르타식 검소한 생활을 즐긴다.
"열차 모형을 만드는 취미 - 놀라운 기계로 가득한 작고 분주한 세계를 만들고 통제하는 일은 얼에게 딱 맞았다. 그리고 그의 사업과 마찬가지로, 합판 위의 제국은 나폴레옹의 통치를 받기라도 하는 듯 점점 커져갔다. 상상 속에서 그는 자신의 모형을 실제 세상의 철도만큼이나 중요하고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p 94)
오랜만에 방문한 지혜로운 어머니. 얼을 포함해 6명의 아들을 키우는 엘라를 위해 '당연히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에게 열심히 일하고 기차와 놀 자격이 있지만, 주중 내내 일하느라 나가 있고 주말엔 지하실에만 있는 남편을 가진 엘라의 삶을 생각하라 말한다. 그와의 오랜만의 외식을 위해 엘라는 지하실에서 그의 비위를 최대한 맞춰준다.
"그는 이만큼의 우주를 정확히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마음대로 통제하고 있었다."(p 108)
그러나 해리가 웨이팅 하우스 가스 터빈을 가져오고 그들의 약속은 월요일로 미뤄진다 가엾은 엘라.
"예전에는 성격이 불같으셨어. 바람처럼 달릴 수 있었도, 가끔 날 붙잡아다가 철썩철썩 때리기도 하셨지. 그래도, 알잖아, 내가 맞을 짓을 해서 그러신 거야, 자업자득이었지."(p 113)
착한 며느리를 위한 현명한 시어머니의 미리 생일 선물은 무엇인 걸까?
"백기를 들자, 해리. 오늘 밤은 여기까지 하자고. 셔먼이 전쟁에 대해 했던 말 알잖아. 영광스러운 평화를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알아보는 게 좋겠어."(p 117)
모성의 지혜는 삶이 거듭될수록 진화한다. 엘라의 모성도 어머니 못지않게 지혜롭다는 사실을 얼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현명하게 참아주고 있는 것이다. 가정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건전한 취미생활을 하고 있는 가장의 애환과, 아이 같고 이기적인 남편 때문에 숨통조차 틔우지 못하는 며느리를 위해 아들의 피터팬에게 일침을 놓는 어머니, 그리고 유혹의 신호를 과감히 물리쳐 스틱스 강을 건너지 않은 얼까지 적당한 선을 그어주는 깔끔한 보니것식 마무리와 인간미 넘치는 그의 유머에 흠뻑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