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정말 멍청한 사자같은 게 될까봐."
어쩌면 그 말을 들었던 그 순간에 나는 슬픔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되지 않았을까. 마음이 차가워지면서, 묵직한 추가 달린 듯 몸이 어딘가로 기우는 느낌이었다. 어느 쪽으로? 여태껏 가늠하지 못한, 그럴 필요가 없었던 세상 편으로, 이를테면 영웅이 사자가 되고 싶다며 더는 헤헤거릴 수 없는 세상."(p15)
부모의 파산으로 남동생은 종암동 큰 아버지댁에, 13살 나(영초롱)는 보건소 의사로 계신 고모가 있는 고고리섬으로 갔다.
슬픔은 차갑고 마음을 얼얼하게 하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p17)
북리 매점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러가는 길. 당찬 복자와의 첫만남. 발목이 삔 이유가 할망당에 햐야할 인사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며 나를 할망당에 데려갔었다.
"사실 내면에 어딘가 에멘탈 치즈처럼 구멍이 난다고 느낀 건 오래전이었다. 그리고 그곳으로는 이런 것들이 술술 빠져나갔다. 자부와 자긍, 자명함이나 자기 확신, 자신감 같은 것. 그그렇게 자존감이 경량화되는 만큼 언젠가부터 나는 법정에서 화가 나 있었다."(p 35)
"결국 분노의 목적과 명분은 사라지고 그냥 분노라는 상태만 남아 활활 탔다. 화는 눈덩이처럼 뭉치고 뭉쳐져서 차가운 불면의 밤이 왔고 병원의 처방약이 없으면 잠들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위원회에 불려가 그런 소명을 열심히 한 끝에 나는 여기에 서 있는 것이었다."(p 37)
"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빨리 털어내야 한다"
눈에 젖을 때의 차가운, 선득함, 그리고 그것이 녹으며 남기는 자국과 눈-물. 나는 사람들이 판사라고 하면 누구보다 냉혈한이리라 여기는 것이 이상했다....
하지만 고통은 그렇게 단련되기는커녕 어느 면에서 더 예각화되었다. 노출되면 될수록 예민하고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워졌다."(p39~40)
슬럼프에 빠진 이영초롱 판사 - 갱신을 위해 다시 제주로 왔다. 변호사에게 시원하게 욕설을 퍼부어 최악의 판사로 노미네이트 되었기에 판결의 내용보다 진행 자체가 곤혹인 일들을 감수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