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쾌차하게. 미안하고 부끄럽네. -서西"( p 8)
문장이 9살 되던 해였다. 관아에서 들이 닥친 사람들이 장이 아버지에게 최서쾌와 책 산 사람의 이름을 물었지만, 그들과의 신의를 지켰던 아버지는 심한 고문으로 산송장이 되어 장독으로 고생하였다.
"천주학 책을 옮겨 적으며 아비는 손이 떨리고 마음에 비바람이 일었다. 우리 같은 것들은 날 때부터 천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더구나. 조선에서는 천지개벽할 리소지만 서양에서는 모두 그렇게 믿는다더라. 천주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p 90)
세상 모든 사람의 평등을 주장한 서학을 탄압했던 역사적 사건.
그로 인해 아버지가 죽게 되었다. 장이가 12살이 되자 사대부 부인 중심으로 언문 소설이 불티나게 팔리게 되고, 그동안 몸을 사렸던 최서쾌는 아들이 운영하던 약방 안쪽에 다시 책방을 차렸다. 장이는 이야기책을 배달했다.
<도리원>기생집에서 낙심을 만나고, 홍교리의 서가 <서유당: 책과 노니는 집>를 보면서 아버지가 꿈꾸던 작은 책방을 머리 속에 그려봤다. 그러나 홍교리에게 배달한 책 『동국통감』이 제 아비를 관아에 끌려가게 만들었던 『천주실의』란 서학 책임을 알게 되었다.
서학은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사악한 글'이라며 금지된 학문이었다.
"우리에겐 밥이 될 이야기, 누군가에겐 동무가 될 이야기, 그리고 또 나중에 우리 부자에게 손바닥만 한 책방을 열어줄 이야기를 썼지."(p 75~6)
아버지를 여읜 이후 혼자라고 생각하는 외로운 아이. 도움 청하는 일이 어려운 장이 편을 들어주는 고마운 사람들. 장이는 어느새 <약계책방> 양아들이 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장이를 아껴주었다.
장이가 14살이 되던 어느 날, 장이는 허궁 제비의 밀고로 사람들이 곤궁에 처한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야 하는 아픔을 아는 장이. 거듭 도망치라는 최서쾌의 마음을 알지만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기지를 발휘해 궁지에 몰린 홍교리를 구할 수 있었지만, 도리원 가족들까지 도울 수는 없었다.
6달 뒤 홍교리의 소개로 대구 향교에서 몸을 숨기던 장이에게 최서쾌와 홍교리, 낙심이가 찾아왔다.
동화사 업둥이였던 장이와 스님이던 아버지와의 인연을 듣게 된 장이. 장이는 홍교리에게 <책과 노니는 집> 언문현판을 선물 받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눈여겨 보던 배오개 집을 살 수 있는 스무 냥이 못 되는 돈을 맡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화사를 내려오면서 장이와 아버지의 인연을 맺어준 사천왕상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았다.
"어렵고 재미없어도 걱정 마라. 네가 아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니. 어려운 글도 반복해 읽고, 살면서 그 뜻을 헤아려 보면 '아, 그게 이 뜻이었구나!' 하며 무릎을 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어려운 책의 깊고 담백한 맛을 알게 되지."(p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