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심플>
새벽의 빨래방에서 중고거래를 통해 클래식 기타를 구매했다. 매너온도가 높은 '미스터 심플'과의 첫 거래. 새벽의 빨래방은 잘 읽히고 잘 써지는 순도높은 시공간이다.
"하지만 이상하지. 여기에 오면 좋을 걸 알면서, 이렇게 써지고 읽게 될 것을 알면서, 안오게 된다. 아니, 그래서 안 오는 것일지도. 좋아지는 것을 원하면서, 좋아지는 나 자신은 원하지 않는 마음. 지친다. 지겹고."(p 199)
H의 죽음은 나를 힘들게 했다. 블루투스 스피커 등 물건을 하나씩 처분해야만 하지만, 막상 처분할때면 변덕이 일었다. 그런데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미스터 심플'이었다. 문화센터 8주 글쓰기 수업을 통해 자서전을 쓰고있던 그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키보드를 구매했는데 쿨거래를 했더니 판매하신 분이 저보고 매너가 좋고 쿨하다면서 슬픔이 아니라 심플이세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심플. 심플. 뭔가 마음에 들어서 그때부터 슬픔을 심플로 바꿨어요."(p 212)
'시향 부당해고' 사건으로 호른 연주자 미스터 심플은 일자리를 잃은 이혼남이 되었다.
"이혼하고 상실을 겪고 슬픔을 느꼈다고 대단한 성찰을 한 건 아닙니다. 나이들면 뭔가 현명해지고 아는 것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건 착각이에요. 모르는 것만 많아지고 그만큼 의문만 깊어집니다."(p 216)
호른 소리를 듣기위해 초대 받은 그의 집. 이혼한 뒤 아직도 부인과 아들의 짐을 처리하지 못하는 미스터 심플과 나는 많이 닮았다. 있는데 없는 것처럼 지내야 하는 게 어렵다는 남자와 없는데 있는 것처럼 지내는게 어려운 남자.
H 가 흥얼 거렸던 <대니보이>를 호른 연주로 듣게 되었다. 슬프고 우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진력이 났지만 이것은 감동이었다.
"퇴고의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완성한 이 글이 엉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둘째는 이걸 다시 쓰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실제로 다시 쓰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고치고 다른 단어로 바꾸는 것이죠."(p 230)
친절하고 매너가 좋은 미스터 심플과 나의 지금은 엉망인지 모른다. 지금 상황을 인정하고 다시 희망을 가지며 '퇴고' 의 과정을 거치면 앞으로 우리의 글들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