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입고프다는 "자유롭고 숨김없이 말을 하고 싶다"는 뜻이고 귀고프다는 "실컷 듣고 싶다"는 뜻이다. 어른이 되니 입고픈데도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입을 닫는 일이 많아졌다. 귀고픈데도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입을 닫는 일이 많아졌다. 입고픈 사람이 귀고픈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이 길 위에 부디 많았으면 좋겠다."(p 19)
⊙밥은 입으로 먹고 욕은 귀로 먹고 겁은 마음으로 먹고, 더위는 그야말로 온몸으로 먹는다... 생각해 보니 온몸으로 먹는 게 하나 더 있다. 나이.(p 22)
⊙단골이 되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닐까. 특정 메뉴를 좋아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 집의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마음에 담는 일, 밥을 먹는 동안만큼은 기꺼이 그 집의 식구食口가 되는 일.(p 27)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만 장래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지금껏 저 단어를 어른들과는 거리가 먼 단어로 인식해왔던 것이다. 장래의 뜻에 대해 곰곰 생각한다. 다가올 앞날. 죽을 때까지, 우리는 장래를 생각해야 한다.(p 31)
"실패가 무슨 뜻인지 아니?
다시 한 판 하라는 거예요.
다시 한 판을 할 수 있는 한, 실패는 아직 오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도중에 있다."(p 33)
⊙내가 잘 나오지 않았더라도 섣불리 지워서는 안 되는 장면에 대해 생각한다. 사진이 남기 위해서는, 그 시간을 마음에 먼저 새기는 과정이 필요하다.(p 35)
⊙결정타 같은 한마디에 심신의 리듬이 무너지면 나도 모르게 욱하고 만다.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어찌할 수 없다. 욱해서 튀어나온 그 말 때문에, 그 말이 지하 주차장에 울려 퍼지던 그 순간 때문에 나는 한동안 괴로울 것이다. 이런 나 자신을 떠올리니 또다시 욱한다. 욱은 욱을 낳는다.(37)
⊙다른 것은 이해하고 받아들일 여지가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틀린 것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p 39)
⊙요즘 나는 10분 전이 아닌 1분 후를 생각한다. 1분 후에 나는 웃고 있을까, 머리를 싸매고 있을까. 머리를 싸매지 않기 위해 역설적으로 머리를 쓴다.(p 41)
⊙'우리'라는 말은 개인에게 안온함을 가져다주지만, 책임을 떠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심어줄 수도 있다. 우리가 '우리'에 대해 항상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p 43)
⊙"좋은 게 좋은 거지"
그 말을 할 때 사람들의 표정은 진실을 가릴 때처럼 비겁하고 본질을 회피할 때처럼 약삭빠른 데가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편을 나누는 기준으로 저 말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데, 자리가 파할 때까지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웃으며 헤어졌지만, 불판 위의 기름때 같은 것이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다.(p 44~5)
"왜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과연 어떤 모양의 그릇일까.
그 그릇에는 무엇이 담기게 될까.
빈 그릇은 허전한 상태이자 두근거리는 상태이다."(p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