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리]
<북경오리구이>
-수도 이름이 붙어있는 위풍당당 아우라의 북경 오리구이는 외교 요리로도 유명하다.
-명나라 주원장이 사랑했던 오리 요리는, 남경에서 시작되었다는 반전이 있다. 오리 덕에 일흔까지 장수한 주원장이 손자에게 황자 자리를 내어주자 그의 넷째 아들 주체가 조카를 쳐버리고 스스로 황제에 오르며 그의 근거지인 북경으로 수도를 옮겨버렸던 것. 그리하여 남경의 오리구이는 북경의 골목까지 등장하였다.
북경에 가면 꼭 해야 할 네 가지- 만리장성, 고궁, 후퉁 둘러보고 북경오리를 맛보기! 코로나가 끝나면 꼭!
#카오야싼츠
식탁 위 오른 북경오리구이를 먹는 세 가지 방법.
썰어먹고, 볶아먹고, 탕으로 먹기.
'카오야 싼츠는 종종 한 가지 대상을 세 가지 방식으로 응용하는 일을 비유하는 데도 쓰인다. 중국인의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p52)'
-오리의 압鴨은 장원급제를 뜻하는 글자 갑甲과 해음이 비슷하여 과거를 앞둔 사람에서 선물하는 풍습이 생겨났고, 백년해로를 상징하는 원앙도 오리과이다. 상서롭고 귀한 음식의 대표주자이다.
<동파육>
미인 많기로 유명한 항주의 명물 - 서호와 동파육.
약 1000년 전 미식가 천재 시인 소식과 관련이 있는 이 요리에서 동파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동파육의 기원은 '애민'이라는 두 글자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요리는 원래 백성들이 소식의 공로에 감사하기 위해 돼지고기를 바쳤는데 소식이 다시 백성들을 위해 솔푸드 동파육을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p 57)
<농어회>
어漁의 중국어 발음은 풍족함과 여유를 뜻하는 여餘와 같아서 물고기는 여유와 풍요를 상징하며, 중국 음식에서 온전한 형태로 나온다. 먹는 법도 머리나 꼬리가 아닌 몸통부터 젓가락을 대는데, 이는 유시유종(有始有終), 선시선종(善始善終), 그야말로 처음과 끝이 다 좋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회로 먹으면 머리와 꼬리는 쳐내야 하고 몸통마저 잘게 토막 내기에 원만했던 운을 토막 낸다 여겨 정서상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식문화가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회는 '다시' 식탁에 오르게 되었다.
<쑹수구이위>
-보양식의 대표주자 잉어를 다람쥐 모양의 새콤달콤한 생선 칼집 탕수로 만든 승천하는 생선.
-청나라 대표 미식가 건륭제가 소주에 갔다가 잉어 요리를 청하는데, 송학루의 주방장은 잉어는 제사용 음식이라 거절했지만, 천벌도 무섭고 황제의 처벌도 무서웠던 요리사가 기지를 발휘해 잉어를 다람쥐 모양으로 조리해 바쳤다. 이후 당시의 관습 때문에 잉어 대신 쏘가리를 이용하면서 쑹수구이위라는 이름이 탄생하였다.
-잉어가 신물이 된 것은 당나라부터다. 중국에는 글자나 단어의 발음이 서로 같거나 비슷하면 그 글자를 바꿔서 복을 빌거나 불행을 피해가는 해음 풍습이 있는데, 중국어로 잉어를 뜻하는 리鯉는 당나라 왕조 리李와 같다. 허나 이익을 뜻하는利와도 발음이 같기에 행운을 찾아오기를 기원하며 몰래 먹었다고 한다. 국가 이념상 신물이지만, 개인 입장에서는 행운과 소망의 표식. 민간의 풍습과 민심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등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 과거 급제는 잉어가 용이 되는 것을 비유하며 소미연이라는 자축연에 잉어 꼬리 구이가 빠질 수 없었다. 잉어 꼬리에 불이 붙으면 용이 된다는 믿음은 신분 상승의 기원이 숨어있었다.
<마파두부>
두부의 시조는 한고조 유방의 손자로 회남왕 유안이다. 여덟 명 연단사와 초산(팔공산)에 모여 불로장생약, 즉 단약을 만들다 우연히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그 아래 기우촌은 '중국 두부 발상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두부는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은 겸손한 식재료로서 타자와 조화를 이루는 데 뛰어나 그 응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p107)
그리하여 '천진을 어지럽힌' 동파두부와 마파두부가 만들어졌다.
사천요리 중 단연코 으뜸인 마파두부는 청나라 동치연간(1861~1875)에 만들어졌다. 솜씨 좋은 곰보 아줌마의 작은 식당에 가난한 상인과 노역자의 허기를 달래주던 밥도둑.<진 마파의 두부>는 대표적 서민음식이다. 진씨는 사천요리의 으뜸장인 '두반장'도 발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