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잡지에 글을 쓰는 공상가들은 인류 미래가 철도에 달려 있다고 주장(p 104) 하는 1900년대. 그시대 유명인들이 소설 속에서 되살아 난다.
세일러복 차림의 소년의 아버지는 피어리와 함께 남극 탐험대에 소속되어 루스벨트호에 몸을 담는다. 철도 재벌 상속자 해리 K 소는 부인의 정부이자 건축가인 스탠퍼드 화이트를 저격하여 재판을 받고, 에벌린 네즈빗은 시대의 요부가 되어 가십에 휩싸인다. 프로스트는 자신의 제자 융, 페렌치와 함께 뉴욕을 방문하고, 마술의 대부 후디니는 따뜻한 매력으로 되살아난다. 무정부주의자 옘마 골드만은 에벌린에게 말한다.
골드만은 에벌린에게 사회를 두 가지로 분류해 준 바 있었다. 하나는 욕심과 야만, 굶주림, 불의와 죽음이 판치는 사회로, 바로 개인의 자본으로 돌아가는 현재의 국가 체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유토피아적 차분함이 빛나는,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모든 사람이 동등한 존재이며 일과 부를 합리적으로 나누는 그런 사회였다.(p 97)
그러나 과연 그런 나라가 가능하기는 한 걸까?
전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답니다. 어떻게 다수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순순히 착취당하고 있느냐고요. 답은 다름이 아니라 다수가 자신의 삶을 소수의 삶과 동일시하도록 설득당하며 살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p 94)
전통 유럽발 백인 부자들의 화려함과 권능 VS 가난한 이민자와 여성, 노동자들의 비통한 삶의 극명한 대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더 극명해진 차이도, 조금의 관대함으로 신장된 무엇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세일러복을 입은 소년이 살았던 1900년대, 그 차이는 너무도 극명하여 우리는 낮은 자리의 사람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