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
사는 게 숨찰 때, 건물 맨 꼭대기 가장 자리 창문을 바라보며 창문의 정서를 느낀다.
그곳은 세상 가장 외롭고 쓸쓸하고 막막한 곳.
더는 옆으로도 위로도 갈 수 없는 막다른 지점을 보고 있노라면 숨통이 트인다.
중3 때 집을 나가 13년째 돌아오지 않는 엄마 때문에 폐인이 된 아빠와 비관주의에 물든 동생 대신 생계형 가장이 된 그녀에게 공장은 뜨거운 열기와 날리는 먼지의 사막과도 같다.
그러다 우산씨를 만나고, 재하 오빠의 서늘한 부채 바람보다 우산씨의 바람 없는 우산에 더 상쾌함을 느낀다.
#우산씨
"우산에 기대어 기생한다는, 지탱하면서 의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p 9)
나태와 권태를 모르고, 피곤을 무시한 채 매일 광장에 나타나며 영혼 회귀를 실현하는 그는,
'우산 안에 자신을 가둔 채 오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벌과 고문(p 90)'을 자행하듯이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사람과도 같았다. 가늘고 긴 슬프고 둔해 보이는 기린과도 같은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조현병자인가? 공무원인가? 유령인가?
그는 자신만의 사막(광장)에서 자기 일을 하며(p 53), 해주에게 우산 곁을 내준다.
#영주
해주와는 극과 극인 십 년 차 끽연가.
죽음을 생각하고, 노래하고, 말한다.(p 26)
스스로 만들지 않아도 삶의 불행은 알아서 줄기차게 달려온다.
"행복은 왜 푸짐할 수 없나. 맛없는 불행은 왜 후하기만 한가."(p 75)
라고 생각하는 비관주의자이며 염세주의자.
독배를 삼키듯 오묘한 죽음의 멜로디를 지어내지만 레이블 음원 공모에서 번번이 탈락한다.
음악은 그녀 삶의 마지막 타협점. 그녀의 죽음의 노래에서 해주는 편안함과 위로를 느낀다.
#재하
목공 장인 아버지가 뇌졸중에 걸리자 형대신 가업은 잇게된 나무 예술가.
"재하 오빠의 삶이 사막이 아닌 지옥이 된 건 형 때문이다...
형은 자신의 꿈을 위해 천부적인 재능을 고의로 숨겨왔던 것이다."(p 86,87)
"애초에 꿈을 꿔보지도 못한 삶과 꿈을 접어야만 하는 삶 중에 어느 쪽이 더 참담할까. 사막과 지옥의 차이일까.(p 90)"
사막과도 같은 지옥에서도 해주를 보며 견뎌왔는데 어느 날 우산을 쓴 수상한 놈이 자꾸만 해주 곁에 얼쩡거린다.
#아버지
집을 나간 아내를 찾아다는 무능한 캐릭터.
13년 만에게 생계형 가장인 딸에게 하는 그의 고백은 너무나도 웃프다.
"나는 이제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은 아버지 좆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활력도 경제력도 없는데 거기다 좆까지 무력해서 엄마가 떠났다. 이것저것 아무리 비교해 봐도 가장 무능한 건 그러니까, 아빠의 좆인 것이다."(p 71)
#바오
15살 때 블랙핑크를 보려고 한국 사람에게 시집온 누나를 따라온 베트남 청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눌러앉아 돈을 벌며 동시통역사를 꿈꾼다.
해주네 일손이 필요할 때 나타나는 구원투수로, 머리 좋고 부지런하며 빠르고 정확하다. 나이는 어리지만, 지혜와 위로의 캐릭터.
"청춘과 젊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언가가 차요. 찾아와요."(p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