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 호로시는 소세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왕이 와서 그를 치하했을 때 소세키는 어떤 자부심을 느꼈지만, 전쟁에 대한 후회로 물든 자부심이었다."(p 66)
제국의 무사였던 소세키는 전쟁의 공포와 잊을 수 없는 머리없는 사내의 이미지 때문에 퇴역하였다.
"무사 소세키를 구원한 것은 이미지였다. 그것 역시 현실 저편에서 온 눈부신 것이었다. 머리 없는 사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평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숭고한 이미지가 그를 살렸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미지였다."(p 66~7)
네에주(눈).
그녀는 곡예사였다. 직선의 단 한 줄에 삶과 생명이 걸린.(p 70)
"그녀의 생은, 삶의 평범함과 우연의 비범함이 엮고 푸는 마디들이 있는 구불구불한 줄처럼 나아갔다. 그녀의 예술은, 일직선의 팽팽한 줄 위에서 위험 속에서 섬세하게 나아가는 것이었다. 예술에서 그녀는 독보적이었다."(p 73)
"지상 위 300미터를 걸을 때 그녀는 가장 편안했다. 1밀리미터의 벗어남도 허락되지 않는 길.
일직선의 앞길.
그것이 운명이었다.
한 걸음씩 내딛는 길.
생의 한끝에서 다른 끝까지."(p 73~4)
봄눈송이가 탄생하고, 빛의 황홀 속에 아이는 자랐다.네에주는 한 손에 소세키의 사랑과 다른 한 손에 아이에게 주는 사랑을 들고 있었다.
"그 깨지기 쉬운 평행봉은 행복의 선 위에서 균형을 잡는데 충분했다."(p 80)
"어느 날, 평행봉이 잡아주던 균형이 깨질 듯하더니 부서져버렸다.
소중한 두 존재로부터 받는 애정만으로는 행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공중에서의 삶이 그녀에게 잔인할 정도로 부족했다.
현기증과 떨림과 정복에 대한 갈증이 다시 생겼다.
그녀가 원하는 건 다시 곡예사가 되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마지막 줄타기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했다."(p 81)
젊은 여자는 완벽한 자신의 예술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갔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숨 한 숨. 한 침묵 한 침묵. 현기증에서 현기증으로. 전혀 흔들림 없이.(p 85)
네에주는 한 마리 새가 되에 흰빛 침대에 잠들었다.
"선생은 딸의 교육과 예술에 전념하기로 한다. 절대적 예술에. 아내의 얼굴이 비치는 딸의 얼굴이 염감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예술에서, 무너진 균형을 되찾았다...
선생은 자신의 그림에 만족할 수 없었다. 아무리 잘 그린 그림도 너무 색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와 닮은 것 같지 않았다. 네에주를 정확히 그리려면 백색이어야 했다. 텅 빈 듯해야 했고 순수해야 했다."(p 89)
끝없는 작업 끝에, 실명한 소세키.
실명의 깊이 속에서 가장 하얗고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그렸다.(p 89)
가장 어두운 곳에서 선생은 흰빛을 그리고, 순수함을 발견했다.
부재로부터 예술의 진수를 길어낸 예술의 대가가 되었다.
유코는 일본 알프스를 지나는 중 네에주를 목도했다 말하고 한 달여 고민 끝에 소세키는 네에주를 만나러 떠난다.
"시인은, 진정한 시인은 줄타기 곡예사의 예술을 지니고 있네.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움의 줄을 한 단어 한 단어 걸어가는 것일세. 시의 줄은, 한 작품의 줄은, 한 이야기의 줄은 비단 종이에 누워 있지. 시를 쓴다는 건 한 걸음씩, 한 페이지씩, 책의 길을 걸어가는 일일세. 가장 어려운 건 지상 위해 떠서, 언어의 줄 위에서, 필봉의 도움을 받으며 균형을 잡는 일이 아닐세. 가장 어려운 건 쉼표에서의 추락이나 마침표에서의 장애와 같이 순간적인 현기증을 주는 것으로 중단되곤 하는 외길을 걷는 일이 아닐세. 시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시 쓰기라는 줄 위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일일세. 삶의 매 순간을 꿈의 높이에서 사는 일, 상상의 줄에서 한순간도 내려오지 않는 일일세. 그런 언어의 곡예사가 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일세."(p 100)
"길은 멀었다. 끝없는 눈길이었다.
꽃 핀 벚나무들처럼 흰빛이었다.
두 행인과 동행하는 침묵처럼 흰빛이었다.
마침내, 어느 아침, 산봉우리들이 나타났다.
이제 길은 하늘과 순수함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p 104)
"선생은 무릎을 꿇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되찾은 젊은 날을 슬퍼했다."(p 108)
그녀의 곁에서 잠에 든 소세키.
선생이 죽자 세상의 흰빛이 그를 덮었다.
그는 행복했다.
진심으로.(p110)
"선생과의 우정과 선생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눈 속에서 잃어버린 사랑 때문에 울었다."( p 113)
"겨울의 첫날에 눈이 내렸다. 비단 종이 위에 시의 먹물도 함께 내렸다."(p 115)
"유코는 시인다운 시인이 되었다. 그의 하이쿠는 절망적으로 백색이 아니었다. 그들의 시들은 무지개의 모든 색들을 나눠가졌다. 그의 시편들은 투명했고 정교했고 다채로웠다. 그러나 마음의 땅은 이상하게도 여전히 백색이었다."(p 117)
"그녀를 보자마자 유코는 아름다움에 놀라 몸이 떨렸다. 그가 비단 종이에 정성을 다해 쓰고 있던 하이쿠도 현기증을 느꼈다. 유코의 붓이 미끄러지며 종이 위에 이상한 기호를 만들었다. 직선의 중간에 쉼표가 찍혔다. 아름다움의 줄 위의 곡예사 같았다."(p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