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게이 인권단체 독서모임에서 만난 배우 지망생 주호. 자신은 게이가 아닌 양성애자이며 자신의 정체성은 변형·확장되며 언제나 재정의될 수 있다 말하는 주호가 낯설었지만, 예술의 공통분모로 가까워졌다. 그러나 배우를 그만두고 에이 섹슈얼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여성과 사귄다는 말을 들은 윤범은 주호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그와의 만남을 미루던 윤범은 오랜만에 주호네로 향했다. 주호와 동거 중인 인주는 주호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말했고, 그것이 윤범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 사람은 윤범 씨를 만난 게 아닐까. 그날 이 사람이 만난 건 언제라도 연락해 만날 수 있는 윤범 씨가 아니라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는 윤범 씨가 아닐까. 이 사람은 윤범 씨에 대한 마음을 처분하거나 무효화하지 않고 끝내 간직해 보려는 게 아닐까."(p 127)
"맹세컨대 우리에겐 아무 일도 없었다고, 걷다가 손끝이 한 번 스친 적도 없는 게 바로 우리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다음 이어진 인주 씨의 말은 주호와 내가 보낸 시절의 모양이 결코 같지 않으며, 내가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이 복잡해지는 관계는 좀처럼 인정하지 못하는, 아니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라는 걸 실감하게 했다."(p 128)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책 속에 이런 무지와 혐오를 보란 듯이 전시해놓고도 까맣게 몰랐는지. 어떻게 이런 걸 써놓고도 출간 직후 주호에게 다정한 인사말을 적어 책을 선물했으며, 어떻게 그토록 당당하게 연대와 다양성과 자긍심 같은 말을 끌어다 책을 홍보했는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싶지만 나는 정말이지 몰랐고, 어쩌면 계속 모를 수도 있었지"(p 133~4)
우리의 세계를 인정하고 포용하지 않는 건 나일까, 너일까?
자신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혐오로 다가간다는 사실을 모른 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무심코 쓴 문장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번 숙고해 쓴 문장까지도,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거나 곤혹이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인 건 같다. "(p 138)
"결국 무엇을 쓰더라도 나를 경유하지 않을 수 없다는 한계를 확인하는 게 더 좋았다."(p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