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한 편의 시다. 구름에서 떨어져 내리는 가벼운 백색 송이들로 이루어진 시.
하늘의 입에서, 하느님의 손에서 오는 시이다.
그 시는 이름이 있다.
눈부신 흰빛의 이름.
눈."(p 8~9)
신도 승려를 아버지로 둔 유코 아키타는 하이쿠 와 눈 그리고 마법의 숫자 7에 열정을 가졌다. 17세의 유코는 시인이 되고 싶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다.
"시는 직업이 아니야.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지.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흘러가는 물이다.
이 강물처럼 말이야."(p 11)
아버지는 그에게 무사인지 승려인지 선택하라 했으나 18세 유코는 눈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위해서 겨울마다 77편의 시를 쓰겠다고 말한다.
"대낮 같은 만월의 밤. 솜처럼 부푼 구름 군단이 하늘을 가리러 왔다. 하늘을 장악하려는 수천의 백색 무사. 눈의 군대였다. 유코는, 달 아래 앉아, 조용히 침입을 지켜보았다. 여명이 비칠 때 집으로 돌아왔다."(p 18)
메이지 궁정 시인이 유코를 찾아와 두 가지를 지적하였다.
"아름다움의 샘에서 길어 온 언어입니다. 언어가 독창적인 음악으로 짜여 있어요. 그런데 시에 색이 없어요. 아드님의 글들은 절망적으로 하얗기만 합니다. 그래서 거의 보이지가 않습니다. 시를 왕께 보이기 전에 아드님은 시에 색을 입히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눈이지요?"(p 27~8)
그러나 유코는 만 개의 음절을 흰빛으로 채운 7년이 지나야 왕을 뵐 수 있다 말한다.
"알아야 하네. 시는 영혼의 회화이고 춤이고 음악이며 서예이기 때문일세. 시 한 편은 그림 한 폭, 춤 한 편, 음악 한 곡이며 아름다움에 대한 글쓰기이기 때문일세. 대가가 되려면 절대적 예술가의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네. 자네 작품은 놀랍도록 아름답네. 작품들 속에 춤도 있고 음악도 있지. 눈처럼 희네. 그런데 색이 없네. 회화가 없다는 뜻이지. 유코, 자네는 시인이지만 화가가 아닐세. 그런데 바로 화가가 자네에게 필요한 부분일세. 부족한 것은 오로지 그것뿐이네. 그러나 바로 그 하나 때문에, 자네 시는 세상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 내 충고를 듣게나."(p 38)
유코는 메이지 궁정 시인과 동행한 그녀에게 지독한 미움과 거대한 사랑을 느끼며 절대적 예술가 소세키 선생께로 향한다.
"마음속 태양을 향해 가는 여행이었다. 태양의 순수함과 세계의 순수함이 보이는 길이었다. 천천히 걸으며 그는 순수하고 반짝이는 기쁨을 느꼈다. 자유롭고 행복했다. 짐이라곤 사랑과 시에 대한 신앙의 금이 담긴 가방뿐이었다."(p41)
색채의 대가이자 장님인 소세키를 만난 유코는 테스트를 거쳐 1년 동안 하루 두 번, 새벽과 노을 질 때 색채들의 강렬함을 길어내는 법을 배우게 된다.
"너무 보이는 것에 의존하지 마세요. 길을 잃게 될 뿐입니다."(p 55)
"사랑이랑 가장 어려운 예술이기 때문이지. 글을 쓰는 것, 춤을 추는 것, 작곡을 하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은 모두 사랑하는 것이네. 그것들은 줄타기와 같네. 가장 어려운 건 떨어지지 않고 걷는 것일세. 소세키 선생인 한 번 사랑에 빠져 줄에서 떨어지셨지. 하지만 예술이 그를 절망과 죽음에서 구해냈네."( p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