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한 가지 좋은 것도 있어. 그게 뭔지 알아? 우리는 청소하면 동네가 깨끗해지는 게 보이잖아. 일한 티가 나는 거지.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는 게 없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야? 그에 비하면 이 일은 양반이지.(p 57)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복만 많이 받기를 바라는 것만큼 말도 안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복을 많이 받기 위해서는 그전에 복을 많이 지어야 한다...
이는 밥을 짓는 것처럼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면서 집을 짓는 것처럼 큰맘 먹고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농사를 짓는 것처럼 인내가 필요하고 글을 짓는 것처럼 매번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보약을 짓는 것처럼 온 마음을 다해야 하는 일이 바로 복을 짓는 일이다.(p 58~9)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나를 다독이는 것 같기도 하고 추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느낌표로 떨어지던 물방울은 마지막에 자세를 바꿔 물음표를 그리며 고이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그리하여 비가 그쳤을 때에는 길 위에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도 커다란 쉼표 모양의 웅덩이가 생긴다...
어젯밤부터 내리던 비는 나를 확실히 다그치는 것 같았다. "비非 비非 비非!" 떨어지며 "잘못됐어, 잘못됐어, 잘못됐다구!"라고 나를 한동안 몰아붙였다. 이처럼 마음 상태에 따라 빗소리는 다르게 들린다.(p 63)
⊙놀이의 가장 큰 미덕은 게임과는 달리 승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데 있다.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것도 놀이의 장점이 될 수 있다. 게임이 끝나는(over) 것이라면 놀이는 잠시 중단되는(pause) 것이다. 그래서 혼자 놀이를 해도 전혀 억울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시작했다가 나도 모르게 끝나는 것, 그것이 바로 혼자 놀기의 정수라고 생각한다.(p 64~5)
⊙'덕분'은 은혜나 도움을 받았을 때, 상대의 손을 맞잡는 순간에서 오는 온기로부터 나오는 말이다...
'때문'은 탓을 돌리는 데 주로 활용되는 말로, 상대의 손을 뿌리치는 순간에서 오는 냉기로부터 나온다...
'덕분'이 '때문' 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덕분'과 '때문'의 대상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지만, 속을 들추어보면 실제로 이 말은 나를 향해 있는 경우가 많다. 나의 덕분이라고 말하기에는 쑥스럽고 나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창피한 것이다.(p 66~7)
"생각해 보니 부족하거나 과한 것은 결코 다르지 않았다...
씀씀이가 과하면 지갑이 비고 말이 과하면 실수를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듯, 마음 또한 상대에게 너무 많이 주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마음이 과하면 주는 사람도, 그것을 받는 사람도 부담스럽다. 마음에 무게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p 71)
⊙기억이 전해지고 취향이 전해지고 사랑이 전해지는 것, 이 모든 전해짐에는 다름 아닌 내려감이 있었다. 그리고 고향에는 기억과 취향과 사랑이 여기저기 남아 있어, 고향에 내려가는 길은 내내 설레는지도 모르겠다. (p 73)
⊙그 사이, 대학교 입학부터 시작해 취업과 승진 결혼,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질문들만 산더미처럼 늘어났다. 질문은 가득한데 답이 없으니 섣불리 누가 먼저 입을 떼려 하지 않았다. (p 75)
"Stay weird, stay different."
이상한 채로 있는 데서, 다른 상태로 머무르는 데서 아마 특별한 무언가가 나올 것이다.
이상함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난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놀랍고 색다른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독임, 난다, 오은, p 77( 아카데미 시상식 각색상 수상자 극작가 그레이엄 무어의 말)
⊙요컨대 들여다보면서 자기 자신과, 내다보면서 세계와 가까워지는 셈이다. 들여다보기와 내다보기를 둘 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다.(p 79)
⊙기대는 간헐적으로 찾아오고 걱정은 매일 들이닥친다...
기대는 점점 줄어드는데 걱정은 풍성해지니, 간만에 품는 기대는 더욱 애틋하고 소중할 수밖에 없다.(p 81)
⊙하지만 불현듯 끝이 찾아오는 경우, 끝을 말하는 사람에 비해 끝을 듣는 사람은 여러모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동안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다가 나중에야 분노하고 마는 것이다...
"시작은 마음을 채우는 일이라 마냥 설렐 수밖에 없다. 반면, 끝은 마음을 덜어내는 일이므로 어느 때보다도 신경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p 83)
농담에도 다름 아닌 농담濃淡이 필요한 것이다.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둔중한 것으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실없는 줄 알고 받아들였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농담에 실實이 있다는 것은 뼈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농담은 가슴속에서 쉬 지워지지 않는다. 열매가 다 익고 뼈가 다 녹을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농담은 잉여인 경우가 많지만, 잉여이기 때문에 앙금이 될 확률이 높다. 실 있는 농담을 받아들여 앙금이 아닌 뼈로 만들 때 우리는 단단해질 수 있다."(p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