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자 타지역 공공의료원 문제가 터지며 영광의료원사태가 주목을 받고 지원으로 배당되었다. 작은 사건으로 축소시키려는 의도였다. 의료원은 산재가 인정되는 결과를 원하지 않는다. 피고인 근로복지공단 역학조사기관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또한 '근무환경과 간호사들의 피해 상관성이 미비하다'고 보고했다. 법관들은 간호사측의 패소를 거론하자, 영초롱은 공정함을 고민해야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생각하고 회피신청을 접는다.
행정의 경우 판례 하나가 수많은 행정소송을 불러 일으키므로 신중해야한다.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 관계가 있다고 넉넉히 추단한다는 것이 최선인 걸까?
"제주 속담에 '속상한 일이 있으면 친정에 가느니 바다로 간다'는 말이 있다. 복자네 할망에게 들었지. 나는 제주, 하면 일하는 여자들의 세상으로 읽힌다. 울고 설운 일이 있는 여자들이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무한대의 바다가 있는 세상. 그렇게 매번 세상의 시원을 만졌다가 고개를 들고 물밖으로 나와 깊은 숨을 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다 잘되지 않겠니?"(p 189)
소송이 진행될수록 영광의료원과 엘리사벳은 압박을 가중시켰다. 주변인 조사뿐 아니라 개인정보까지 들먹여 맨탈을 흔든다. 부당하게 흔들릴 수록 이 자리 꼭 지켜내야 한다. 법원에서도 영초롱을 열외시키려 애쓴다.
"당연하지, 너가 왜 그런 모욕 속에서 직무를 포기한단 말이니? 야, 우리 부처 관두고 인간 하자, 어? 아득바득 버티자. 사람이 칼을 뽑으면 뭐라도 자르긴 잘라버려야지."(p 207)
"나는 나중에야 복자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쩌면 재판에서 지게 될 것이 두려워서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나를 영원히 원망하게 될 테니까. 나라는 애를 영영 그런 악연으로 묶어 기억 속에 가둬야 할 테니까. 하지만 초저녁에 외로이 뜬 별처럼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그 오름에서 나는 말할 수 없는 배반감과 분노, 내가 맡고 있는 이 직분을 함부로 하는 침해같은 것을 느꼈다. 그건 내가 베풀고 싶었던 선의와 우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 세게 나를 찌르는 것이었다."(p 217)
"그런데 영초롱아, 너가 보는 것이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늘 생각했으면 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에 불과하다고 네가 내게 멋진 말을 알려 주지 않았니. 그렇다면 법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의 면면도 최소한에 불과한 거야...
너는 최소한의 도덕을 다루지만 나에게는 너가 최선의 사람이라서 나는 늘 너가 좋았어.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도 들어. 어쩌면 한번 기울어진 채로 시작된 관계는 복구가 되지 않을지도."(p 220)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사표를 낸 것과 너가 더이상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를 하지 않는 것....
글쎄, 그런 건 인생을 더 깊이 용인한다는 자세 아닐까?"(p 233)
최선일 수 없는 선택이 실패가 아닌 더 깊은 용인이라는 생각은, 오늘을 사는 우리를 관용케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