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에는 나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p18)'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줄것 같은 일촌관계인 부모 자식 관계는,
'정말 끝이 날까봐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p137)' 이다. 나와 엄마의 관계뿐 아니라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지연은 어쩌면 '우리'의 관계를 되될릴 수 있도록 그녀들의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는 할머니의 삶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p 77)
'남편은 나의 고통에 관심이 없어.'(p60)
소설 속 남편과 아버지는 서사 속 여자들에게 의지가 되지 못하는 '무용'의 존재이다. 가장 멋있는 새비 아저씨 조차도 '부재'의 존재이다.
"네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새비 아저씨는 그만큼 더 사는 거잖아."(p 81)
우주의 세계관으로 보면 한낱 의미조차 구할 수 없는 우리의 삶. 그러나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을 기릴 수 있다.
지연의 생각은 나와 닮은 구석이 많았다.
"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 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 보다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p86)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p 156)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내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을 돕는 것은 쉬웠다. 내가 돕기 어려운 일을 돕는 것도 할 만했다. 하지만 나를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일은 내게 불가능에 가까웠다."(p 212)
"상대를 위해 얼마든지 져 줄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상대가 나를 짓밟으려 한다면 참을 수 없으니까."(p 214)
"네가 강해지기를 기도했지.(p188)" 엄마의 마음에도 내가 있었으며,
무뚝뚝한 명숙 할머니의 마지막 편지는 나와 닮은 꼴이다.
호기심 많고 당당한 증조 할머니의 모습 또한 나에게도 존재하며,
예의를 지키고자 애쓰며 그럼에도 그 거리가 섭섭한 할머니의 모습 또한 내 모습이었다.
나의 4대 가족의 서사가 아니지만, 밝은 밤에 있는 모든 여인네는 나에게 녹아 있었다.
깜깜한 밤하늘과도 같은 질곡의 여성사에서부터, 밤하늘에 빛을 내는 달과 수많은 별님들...
우리의 번뇌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무한한 우주의 이치를 되짚으면서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우리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기억해야 하는 존재를 끝없이 기억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