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하얼빈에 먼저 도착한 그들은, 26일 도착하는 이토 암살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사진도 찍었다. 닷새 후 찾아 오란 사진을 기약할 수 없었다. 안중근이 이토를 죽인 뒤 가족들이 하얼빈에서 살기 어렵겠지만, 조선 땅에 놔둘 수도 없었다. 김아려는 큰 딸을 명동성당 수녀원에 보낸 뒤, 정대호를 따라 아들둘과 함께 하얼빈으로 향함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남편이 있는 곳이었다.
안중근과 우덕문은 이토 암살을 위해 다양한 시뮬레이션과 작전모의를 했다. 기회는 한번뿐이었다. 그리하여 우덕문은 채가구를, 안중근은 하얼빈을 맡기로 했다.
이토의 특별열차는 26일 9시 10분 하얼빈역에 도착했다.러시아 재무장관 코콥초프가 이토를 기다리고 있었다. 러시아 군인 사이로 이토가 보였다.
"저것이 이토로구나……저 작고 괴죄죄한 늙은이가……저 오종종한 것이……." (p 166)
"코레아 후라!"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을 덮쳤다.
이토는 하얼빈 역 철로 위에서 죽었다.
안중근은 가족과 해후하지 못한채 대련의 여순감옥으로 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