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
세상으로 부터 버려질 위기에 처한 성인용품 모모 이야기. 그의 사색과정을 담은 회고록이자, 선언문 또는 슬픈 연대기. 모모는 두 여인에게서 외면당한 채 사물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을 들여다보는 심연의 눈을 갖게 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인 지현은 '눈점'이가 되고, 작곡전공 취준생 민영은 '먹점'이 되었다. 그녀들로 인해 도서관의 애칭으로 변모한 것들. 그녀들의 5주년 기념선물 모모는 '책갈피'가 되었다.
"다른 이름이 주는 기쁨을 느낄수록 두 여자는 자신들을 둘러싼 언어의 속박을 유희로 바꾸었으며 점점 더 둘만의 비밀 언어를 늘려갔다."(p 56)
"오랜 세월, 난 억눌려 살았다. 내가 받아야 할 응당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한 채 나는 두 여자의 먹고사는 일에 밀려 숨죽여 살아야 했다."(p 62)
"-점으로 이름을 지어서 그런가, 점점 점이 되어가는 것 같아.
눈점은 먹점을 껴안으며 자신이 힘을 내야 하는 이유를 되새겼다. 망망대해에 빠진 조난자처럼 막막하고 절망스러웠지만 먹점을 부표처럼 끌어안으며 버텨야 한다고 자신을 일으켜세웠다."(p 65)
"어쩌다 여자들이 이토록 섹스를 업신여기게 된 걸까. 섹스 없인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들이, 섹스없인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들이, 섹스에 등돌리고 섹스의 상징이자 육체의 중심인 나를 버리겟다니. 나는 두 여자가 미웠다."(p 74)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려 성욕을 잊은 두 여자. 미니멀 라이프 계명에의해 파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던 모모. 파 따위로 인해 흔들리는 둘의 관계를 바라 보며 인간을 조소하고, 같은 처지에 놓인 철학서를 통해 #무쓸모의쓸모 의 가치를 깨닫으며 스스로 모모라 명명하며 망가진 자존감을 세우는 모모. 결국 다른 용도의 운명으로서 그녀들 곁에 살아남아 쓸모를 가지게 된 #의인화된화자 딜도 이야기.
그는 #동성애자 의 사랑을 섹스의 상징이자 육체의 중심인 페니스를 무시하고 신성한 자연법칙인 이성애를 거스르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족속으로 바라보지만, 희화화된 딜도가 바라본 동성애에는 말초적인 본능의 세계만이 아니었다. 생활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차별적 시선과 두려움을 견뎌내면서 #K레즈 정체성을 드러내는 주인공들. 그들의 두려운 사랑은, 도리어 안스럽게 보이기도 하다. 모조 페니스의 과장된 발화로 남성성을 유쾌하게 풍자하며 '남자없는 여자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김멜라의 소설 속에서는 대용품 마저 거부당한다. 동성의 사랑을 관대하게 바라보며, 현실적 문제에 공감을 표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