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쪽
“타인이여, 우리 모두는 서로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적 있는가? 우리가 서로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 있는가? 우리는 마주보고 있어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 서로의 말을 듣고 있지만 각자 자기 안에 있는 말을 들을 뿐이다.(텍스트 329)”
중국 현대미술 작가 ‘장 후안’의 <가계도>와 벨기에 화가 ‘제임스 앙소르’의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이 문득 떠올랐다.
한 개인의 정체성은 나고 자라면서 여러 관계 속에서 파생된 문화들로 덧씌워져 사회화 되지만, 그 덧대들을 하나씩 벗겨내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의 여정이기도 하다. 가면을 쓴 타인들에 둘러싸여 질식할 것 같지만, 그 안의 나 자신도 사실 가면을 쓰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라는 사람을 타인은 오해하고 있다며 속상해 하지만, 그런 나자신을 나도 잘 알고 있을까 싶다.
“그것들을 본다는 것 외에는 그것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처럼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막 삶의 표면에 도착한 성숙한 여행자처럼 이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다면! 태어나 지금까지, 모든 사물한테 이미 결정된 의미를 갖다붙이는 것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그들에게 사회가 부여한 표현과는 다른, 그들의 타고난 자기표현을 식별할 수 있다면 좋겠다.(텍스트 458)”
“내일이면 나도 ‘한국의 서울 거리’에서 사라질 것이다. 내일이면 나 역시, 그렇다, 느끼고 생각하는 영혼이며 내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우주인 나 역시 이 거리를 더이상 지나지 않을 테고, 나른 사람들이 “그 사람 어떻게 됐지?”라고 어렴풋이 떠올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했던 모든 일, 내가 느끼고 살아왔던 모든 것은 어느 도시에나 있는 일상의 거리에서 사라진 한 명의 행인일 뿐, 아무것도 아니리라…(텍스트 481)”
NASA의 ‘제임스 웹’이 전해주는 깊은 저 너머의 선명한 우주를 보며 ‘여기 살아있음’의 의미를 되새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