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쪽
눈먼, 눈이 먼 여자여! 죽은 몸이니 듣지는 못하겠지! 내 그대를 위해 어떤 천국을 준비해두었는지 그대는 모른다. 천국은 내 영혼 속에 있었고, 그대 주위를 온통 그 천국으로 꾸며주고 싶었다! 그래,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겠다면, 그렇게 하라, 그게 뭐 어때서? 모든 것이 그렇게 그대로였을 텐데, 모든 것이 그렇게 그대로 남았을 텐데. 그저 친구를 대하듯 나에게 이야기했더라면, 우리는 기뻐하고,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즐겁게 웃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함께 살았을 텐데. 그리고 설령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해도, 뭐, 그래도 좋다. 그래도! 그대가 그 살마과 함께 길을 가며 소리 내 웃으면, 나는 그저 길 건너편에서 조용히 바라보았을 텐데...... 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녀가 눈을 뜰 수 있다면! 한순간, 단 한순간만이라도! 조금 전, 내 앞에 서서 성실한 아내가 되겠노라 맹세했던 그때처럼 나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아, 그렇게 날 한 번만 바라봤더라면 모든 걸 이해했을 텐데!
아둔함이여! 오, 자연이여!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혼자다. 바로 그게 불행이다! "이 들판에 살아 있는 자가 있는가? 러시아의 전설적인 용사가 외친다. 용사가 아니지만 나도 같은 외침을 울려본다. 하지만 대답하는 이가 없다. 태양이 우주만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고들 한다. 태양이 떠오르면, 그 태양을 한번 바라보라. 정녕 저 태양은 죽은 존재가 아니란 말인가? 모든 것이 죽었고, 사방이 죽은 자들이다. 오직 사람들만 있을 뿐, 주위엔 온통 침묵만 흐른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사는 땅이다! "사람들이여, 서로 사랑하라." 누가 말했던가? 누구의 계명인가? 시계추가 기분 나쁠 정도로 무심히 시간을 알린다. 밤 두시다. 그녀의 작은 구두가 침대 옆에 놓여 있다, 마치 그녀를 기다리는 것 처럼...... 아니다, 내일염 정말로 그녀를 데려갈 텐데, 정말 심각하다. 이제 나는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