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 만남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영혼 속 어딘가 몰래 숨어 있다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필요할 때 제 스스로 정체를 드러냈다는 의미이리라. 가엾은 농노의, 어머니처럼 다정했던 그 웃음이 생각났고, 그가 성호를 긋던 모습이며 "이런, 정말로 무서웠던게로구나, 얘야!" 하며 머리를 흔들던 모습까지 모두 떠올랐다. 특히 부들부들 떨리는 내 입술을 주저하듯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흙이 묻어 까맣게 더러워진 그 투툼한 손가락이 특히나 기억에 또렷했다.
무엇이 그토록 마레이를 사랑으로 충만하게 했을까?
그때까지 자신의 자유를 기대하기는 커녕 짐작조차 못한, 거칠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어느 농노의 마음이 그렇게나 깊고도 고매한 인간다운 감정으로, 그렇게나 섬세하고도 여성스러운 부드러움으로 충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