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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는 천상 이야기꾼이다. 어떻게 우리 세계의 거의 모든 이야기들, 신화, 역사들, 영화와 문학, 그림 그리고 현실, SF와 환상들을 아무런 위화감 없이 직조할 수 있는 걸까. 툭 건드리기만 해도 끊임 없는 이야기를 쏟아내는 마계의 왕을 쓰러뜨린 그 찬합이, 제로니모가 던져버린 그 찬합이 살만 루슈디에게 떨어졌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는 허구이고, 그래서 현실에서는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는 단순한 오락이라고, 현실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소설을 읽으면, 나는 이야기에 어떤 힘이 있는게 분명하다고,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강력한 것이 그 안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고 만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을 사회성이나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으로 꼽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인류의 제 1 특질은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한 번도 이야기를 짓거나 만나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이야기의 능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이야기는 우리가 가장 잘 흡수할 수 있는 언어의 모습이다. 여러 종교와 철학들도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많은 금언들이나 교훈들도 이야기가 되면 큰 힘을 갖게 된다. 어떤 때는 실재하지도 않는 어떤 삶에서 깊은 위로를 받기도 하며,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이야기를 읽거나 듣는 독자는 현실을 확장하고, 광활한 세계에 대한 경외심과 모험심을 가지게 된다.
심지어 인간은 자신의 상상력 속에 뿌리를 두고 살아갈 수도 있다! 살만 루슈디가 어딘가의 인터뷰에서 "내 성 루슈디는 루시드(이븐 루시드)에서 유래했고, 그의 생애와 사상도 닮은 점이 많아 상상속의 선조 같은 사람" 이라고 말한적이 있는 것처럼. (아 근데 이븐 루시드는 실존 인물이었다고 했던가? 이쯤 되니 진실과 꾸며낸 것의 경계가 흐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