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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시끄러운고독
밖은 서슬 퍼런 전쟁터이고, 전쟁의 승패에 따라 한 시절을 휩쓴 책들이 한탸의 지하실에 쏟아진다. 어느 날은 프로이센 왕실 도서가, 어느 날은 나치 문학 도서가. 그는 그 책들을 매만지며 살리기도, 폐기하기도, 읽기도, 나누기도 한다. 지하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으면 접하지 못했을 종이 꾸러미들이다. 평생을 지하에서 살았지만 이 책들로 만들어낸 자신만의 고독 속에서, 한탸는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세상을 관조하는 도인같다. 하지만 그는 그가 다루었던 압축기보다 몇 배는 큰 대형 압축기와, 책을 책으로 보지 않고 오로지 폐기하는 업무에만 집중하는 새로운 세대를 접하고 나서는 결국 무너지고 만다. 생의 전부를 바쳤던 필생의 과업은 자본과 개인주의 앞에서 순식간에 산화된다.
미치광이와 현자를 넘나드는 한탸의 독백, 예수와 노자, 칸트, 셸링, 헤겔, 고갱, 랭보 등 수많은 위인, 사상가, 예술가들을 넘나드는 그의 사유. 압축기의 움직임 때문인지, 살아 숨쉬는 수많은 문장의 속삭임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끄러움이 소설 전반에 배경음악처럼 자리한다. 이것 같기도 저것 같기도 한 중의적 표현이 한 자리에 할 수 없는 모순된 것들을 동시에 포괄한다. 그런 한탸는, 공산주의 치하에서 출간도 보장되지 않는 작품을 자신의 모국어로 꿋꿋이 써 나간, 작가 보흐밀 흐라발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의 비극은 슬프지만은 않다. 어떤 파괴는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 위한 가장 강력한 ’행동‘이라는 것을, 작가와 한탸는 온 생을 통해 명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떠한 목적으로 책을 접하지 않고 오로지 절절히 사랑해서 책에 인생을 바친, 책을 향한 짙은 연서이기도 했다. 한탸만큼 지경이 넓어지면, 더 많이 사랑하게 될, 이미 여러 번 읽었지만 더 여러 번 읽게 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