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고 막무가내인 루, 싸가지 없는 슬기, 그들과 함께 살다 결국 구역질이 난다며 떠나는 강아지 블래키, 우유부단한 정원, 성실하나 소심한 네모. 그들이 매일 겪고 만드는 하찮은 실패들의 향연. 사실 ’실패‘라고 부르기에도 머쓱한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다. 어딘지 모르게 서툴고 답답한데, 책은 그들의 실패를 어느 한 부분도 미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지는 부분도 일절 없다. 그들의 실패는 끝까지 실패다.
근데,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실패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이 등신같고 모자란 이야기는 그냥 우리네 삶 이야기가 아닌가. 비겁하게 허울이며 의미며 뒤집어씌운 거 다 벗겨내고 나면 이게 딱 나고 우리들인데. 그래서 이 귀여운 그림이 슬펐고 웃겼고 통쾌했다. 솔직한 작품 앞에 서면 읽는 이들도 솔직해진다. 철 참 더럽게 안 들겠구나 싶은 이들 날달걀 같은 애들 앞에서 내 삶의 면면 역시 다시 돌아본 시간들.
“시간을 들여서라도 표현하고 싶은 게 있고, 그게 결국엔 잘 전달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은 거겠지? .. 누군가 공들여 만든 걸 보는 건 역시 유쾌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