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한 소설로 시작한다. 무자비하고 이기적인 투자자 앤드루의 실체를 까발리는 소설. 두 번째 글은 그 소설의 주인공인 앤드루가 아내인 밀드레드와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대필가를 구해 작성한 미완의 자서전이다. 세 번째 글은 대필가가 자서전 작업을 하며 왜곡하고 은폐했던 사실을 폭로하는 글이다. 그 와중 대필가가 밀드레드의 일기를 발견하는데, 마지막 챕터는 바로 그 밀드레드의 일기다. 즉, 한 사건-동일인을 두고 다르게 쓰여진 네 개의 글이다.
소설은 1920년대 미국 금융 역사를 촘촘히 묘사한다. 또한 이탈리아인으로 미국 이민 1세대이자 공산주의+무정부주의자인 대필가의 아버지와, 정 반대의 사상을 가진 앤드루를 통해 이념의 대비를 보여준다. 그리고 자본주의 하에서 사실을 ‘만드는’ 자본가의 위력에 두려움을 느끼며 타협해나가는 이(대필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여성(밀드레드)의 비상한 능력이 살아남은 자의 손으로 쓰인 주류 역사에서 어떻게 삭제되어 왔는지도 지도 보여준다.
작가는 네 개의 글로 진실이 어떤 식으로 은폐되는 지 명징하게 보여준다. 진실을 알아나가는 과정도 흥미진진했지만, 읽어 나갈수록 어떻게 사실이 왜곡되는 지가 훨씬 씬 더 충격적으로 와닿는다. 여러 번 자빠지고 뒤통수 맞아가며, 별별 의심을 다 하며 읽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진실이란 어쩌면 해석하는 이가 없으면 소멸되는, 온전하게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곡 역시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난데없는 벼락같은 질문에, 지금까지 쌓아온 비루한 지식조차도 의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근래 읽은 소설 중 제일 기발하고 재밌었습니다.
➕돈 많은 금수저 열등감 폭발한 남편이 엄한 소설가한테 화풀이하면서 아내의 천부적인 재능을 갈취해 역사화하는 이야기.
➕구성 뿐 아니라 문장 문장마다 치밀하게 스며든 총명함이 놀랍습니다. 해당 시기 문학가와 음악을 알면 재미는 배가 됩니다. (작가가 다방면으로 천재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