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는’ 근래의 날들, 그 와중에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마치 시간에 슬로모션이라도 걸린 듯, 빨리감기 속 홀로 정지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자기만의 방> 이나 <등대로> 같은 작품보다 훨씬 더 사뿐사뿐 자유로워 보인다. 문장들이 작은 새처럼 여기저기 훨훨 날아다니는 듯하다.
다만 그 속에 섬세하고 고아하게 담긴 울프의 삶과 가치관들은 문장 언저리에 오래도록 나를 붙잡아두었다. 결혼, 고독, 단절, 여성, 퀴어, 찰나같은 아름다움, 죽음. 울프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모네 후기 작품들이 떠오른다. 순간을 꿰뚫는 집요한 시선이 되려 어떤 경계선을 모호하게 하는 듯한 문장들. 현생 반대편 제일 끝에 있을 법한 느린 세상에 진입할 때마다, 나는 그 시선에 사로잡혀 자주 가만히 고요해졌다.
울프에게 글감이란 생의 모든 순간이 아니었을까. 세상을 이런 눈으로 바라보는 그의 글들을 더 많이 더 오래 더 천천히 읽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 어떤 가지는 나무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초록이었다가 파랑으로 변하기도 하며, 잎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놀라운 기적은 붕괴될 수 있다. 한때 그의 것이었고, 언제나 그의 것이어야 하는 그 보물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