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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의 부모님, 특히 어머니, 할머니의 삶을 다룬다. 글 속의 단어와 표현들이 살아있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 어른들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전달되는 느낌이라 인상적이었다. 이는 천운영 작가가 취재 없이 글을 쓰지 못한다고 말한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한 편 한 편이 그 자체로 재밌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상당히 좋은 단편집이라고 느껴져서 천운영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 나는 앞으로도 작가의 책을 계속 읽어볼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이게 하나하나의 단편인지, 연작소설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는 특히 <아버지가 되어주오>, <우니>, <명자씨를 닮아서>, <다른 얼굴>, <금연 캠프>가 기억에 남는다. 어떤 글은 먹먹했고, 어떤 글은 강렬했으며, 어떤 글은 날카로웠다. 특히 날카로운 것으로 치자면 <다른 얼굴>이 굉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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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에 참여하면 챌린지를 이끌어나가는 '독파 메이트'가 종종 작은 미션을 준다. 그러면 앱 내에서 미션에 대한 답을 작성한 후 공유하게 되는데 그것으로 인해 책을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총 아홉 개의 미션이 주어졌는데, 나는 4개밖에 수행하지 못했다. 꽤 답하기 어려운 미션도 있었기 때문인데, 특히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것과 아버지에게 답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는 질문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져서 수행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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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란 세상을 먹고 소화시켜 싼 똥이라고. 그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믿고 있으니까. 내 속의 것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나를 둘러싼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쓰는 거니까.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게 결국 세상은커녕 나의 미욱함일지라도. 뭐라도 싸려면 뭐든 먹을 수밖에. 하지만 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소설을 써서 나를 알게 되다니. 그게 바로 소설이라니. p.299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