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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태양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제비가 모래에 닿을 듯이 낮게 날았다. 공기 중에는 물비린내가 떠 있었다. 내 일생의 나날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들, 기차를 타고 불안하게 떠났던 여행, 수많은 편지, 기나긴 기다림, 망각한 이름들, 그 모두의 배경으로 물속의 수초처럼 흘러가는 연두색 풍경들. 나는 비밀스럽게 소스라친다. 나는 종종 어떤 감정의 절정 상태를 기억처럼 겪는데, 그것이 행복인지 아니면 정반대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행복한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느낌은 빠르게 휘발되어버리고, 나는 한 마리 티벳개처럼 그 자리에 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