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무차별적 불행의 이상화 대신에 선택적 행복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 사실 죽음과 관능은 어쩌면 서로 떨어진 독립적인 게 아니고 한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파괴의 쾌락은 노력하기만 한다면 생산의 쾌락으로 변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뒤늦게나마 믿고 싶고, 믿으려 노력할 것이다. (1983)
능금
2024.06.19 일이제 나는 무차별적 불행의 이상화 대신에 선택적 행복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 사실 죽음과 관능은 어쩌면 서로 떨어진 독립적인 게 아니고 한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파괴의 쾌락은 노력하기만 한다면 생산의 쾌락으로 변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뒤늦게나마 믿고 싶고, 믿으려 노력할 것이다.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