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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뭘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록색 얼굴, 네모난 얼굴, 관자놀이에 박힌 못, 이마에 있는 흉터 등 정형화된 괴물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랬다.
"이런, 내 친구 프랑켄슈타인이 아닌가?" 그가 외쳤다.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정말 반갑군!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자네를 보다니 내 운이 트인 모양인데!"
P. 75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느꼈던 그 신선한 충격이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그 이름,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그 괴물을 창조한 창조주의 이름이었다.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비밀을 알아낸 주인공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괴물'의 이야기, 사람들은 이 소설을 흔히 공포소설이라고 얘기하지만 나는 읽는 내내 '괴물'이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내쳐지고 절대 고독 상태에 빠져 그 고통을 호소하는 감정에 이입되어 읽어 내려 갔다.
빅토르는 열과 성을 다해 '괴물'을 창조하지만,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이 만들었음에도 무시무시한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어쩌면 이유 없는 혐오감과 공포감을 느끼고 그로 부터 도망친다.
몇 년을 공부와 연구에 매진했던 탓일까, '괴물' 창조에 성공하자마자 열병에 시달리며 앓아 눕게 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랑하는 동생 윌리엄이 죽고, 유스틴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된다. 윌리엄의 시신을 보자마자 프랑켄슈타인은 이 모든 짓이 '괴물'의 짓임을 직감하고, '괴물'을 창조한 자신이 저지른 살인이나 마찬가지라며 깊은 상실감과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아! 어째서 인간은 짐승보다 훨씬 우월한 감수성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일까? 그로인해 훨씬 더 유약하고 의존적인 존재가 될 뿐인데. 우리의 욕망이 굶주림, 갈증, 그리고 성욕에 국한되었다면, 거의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바람 한줄기, 우연한 한마디, 아니면 그 말로 전달되는 풍경 하나하나에 흔들리지 않는가.
P.129
가족 모두가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중에 떠난 여행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한 '괴물'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그간의 얘기를 들으며 일종의 제안을 받게 된다.
책 내용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기도 한, '괴물'이 그간 살아왔던 생애가 펼쳐지는데, 끔찍한 흉물로 살아가는 비참한 삶에 참 마음이 아팠다.
"사람들은 모두 끔찍한 흉물을 저주하지. 그러니 살아 있는 그 어떤 생물보다 비참한 나를 얼마나 증오하겠는가! 하지만 당신, 내 창조자인 당신이 나를 혐오하고 내치다니. 나는 네 피조물이고, 우리는 둘 중 하나가 죽음을 맞지 않는 한 끊을 수 없는 유대로 얽혀 있다. 당신은 나를 죽이려 하겠지. 감히 당신이 이렇게 생명을 갖고 놀았단 말인가? 나에 대한 당신의 의무를 다하라. 그러면 나도 당신과 나머지 인간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겠다. 내 조건에 동의한다면 나도 인간들과 당신을 평화롭게 내버려두겠다. 하지만 거절한다면, 살아남은 당신 친구들의 피로 배부를 때까지 죽음의 밥통을 채울 것이다."
P.131
"진정해! 저주받은 내 머리에 증오를 쏟아붇기 전에 내 말을 한 번만 들어다고. 당신이 굳이 더 불행하게 만들려 하지 않아도, 나도 이만하면 충분히 괴로움을 겪지 않았는가? 삶이 고뇌의 연속에 불과하더라도, 내게는 소중한 것이니 지킬 생각이다. (생략)"
P.132
처음엔 말도 못하고 아니 감정이란걸 느끼지 못하고 그저 동물적 감각으로, 생존 본능을 앞세워 생명을 부지하다 점점 감각을 느끼고 감정을 깨닫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괴물은 인간으로 거듭난다. 비록 숨어 살았지만, 자신의 보호자로 생각한 (어쩌면 착각한) 펠릭스와 그 가족을 훔쳐 보면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고 자신도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사랑에 목마르게 된다. 그를 통해 말을 배우고 언어를 터득하고 책에서 지식을 얻음으로써 그 욕망은 점점 커져가고, 희미한 희망을 가지게 된다-나도 저들과 함께 행복하고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희망.
행복하고 행복한 땅!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량하고 습하고 건강하지 못했던 그곳이 이제는 신들의 거주지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자연의 매혹적인 풍경에 내 정신이 고양되었다. 과거는 기억에서 지워지고, 현재는 고요했으며, 미래는 희망의 밝은 햇살과 환희의 기대로 금처럼 빛나고 있었다.
P.153
그러나 돌아온 것은 혐오일 뿐. 그저 원한 것은 따뜻한 사랑일 뿐이었는데, 기이한 외모로 인한 편견에 쓰디쓴 상처를 입고 창조주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창조주라고 다를 것인가, 여기서 참 프랑켄슈타인이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고 느낀게, 결과야 어찌됐든 자신의 이기와 욕심으로 창조한 창조물이면 그 책임을 끝까지 다해야 한 것 아닐까? 자신이 거두어주고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냐? 왜 없애려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거지? 물론 윌림엄은 괴물이 죽였다만, 애초에 눈을 떴을 때, 도망치지 않았다면? 이 모든 비극은 일어나지도 않았던 게 아닐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프랑켄슈타인 옆의 소중한 사람들이 죽고, 둘 사이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지고, 마침내 월턴이 목격한 부분까지 내용이 이어지다 마지막에 프랑켄슈타인이 죽고 '괴물'이 찾아온다.
나를 존재하게 만든 이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면 우리 두 사람의 기억도 금세 사라지겠지. 해도 별도 보지 못하고 뺨을 희롱하는 바람도 느끼지 못하겠지. 빛, 감정, 그리고 감각이 사라질 것이고, 이런 조건에서 나는 행복을 찾아야 한다. 몇 년 전, 이 세계가 담은 심상들이 처음 내게 열렸을 때, 여름의 명량한 온기를 느끼고 바스락거리는 잎사귀와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내게 이들이 전부였을 때는 죽기 싫어 흐느꼈을 텐데. 죽음은 이제 내게 남은 유일한 위로다. 범죄에 더렵혀지고 쓰디쓴 회한에 갈기갈기 찢기 내가 죽음이 아니라면 어디서 휴식을 찾겠는가?
P.302
괴물의 마지막 독백 장면에선, 외롭게 산 그의 삶이 안타까워 눈물이 찔끔 흐를 정도였다.
인간의 욕심으로 태어나 인간의 혐오로 삶이 얼룩지고 결국 인간의 도움을 받지 못해 죽음을 맞이하게되는 '괴물'. 그 삶을 누가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책을 다 읽고 다시 제일 앞 장으로 돌아갔다.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고?
ㅡ「실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