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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에게 영혼에 대해 무엇을 믿는지 물었고 엄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엄마는 시선을 내가 아닌 우리 앞의 강렬한 흰빛에 둔 채, 우리 모두는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는다고, 그저 무엇 하나 지속하지 않는 감각과 욕망의 연속일 뿐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어릴 때 엄마는 스스로를 따로 분리해 여긴 적 없이 다른 사람들과 불가분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은 모든 걸 알려 들고 실제로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마치 모퉁이만 돌면 각성이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라고 엄마는 말했다. 하지만 도통함이란 사실 없으며 이해가 고통을 줄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이 생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삶을 거쳐가는 것으로, 무의 상태에 도달하거나 다른 곳에서 고통을 받는 것, 이 두 가지 지점 중 하나에 이를 때까지 연기가 나뭇가지 사이로 흐르듯 번민 속에 삶을 관통하는 것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