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우 작가의 <쇳밥일지>를 읽었다. 이 책이 처음 나올 때부터 관심은 갖고 있었는데, 마침 독파 챌린지로 올라오고 뭉클에도 이달책으로 판매하고 있기에 이달책으로 구매하였다.
이 책의 제목과 띠지만 보고도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용접공으로 일하던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어느 정도 맞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이 책에서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 책이 나오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간순으로 현재까지 오면서 각 시점에서 만났던 사람들,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글쓰기로 상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고, 일을 하면서도 소설을 썼고 공모전에 출품도 했다고 한다. 물론 수상은 못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그의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일하면서 일기처럼 그의 일상들과 생각들을 적어나갔고, 그렇기에 이런 책도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말마따나 <인간극장>에 나올법한 이야기들, 보는 이에 따라서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차라리 성장소설의 줄거리 같은 이야기들. '불우하게 자랐던 주인공이 환경을 딛고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라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경을 딛고 노력한 것'까지는 맞지만, 아직 '성공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그는 이제 막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고, 앞으로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전환점에서, 그동안 자신이 지나왔던 과정을 되짚어보고 각오를 새로이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주면 될 것 같다.
혹자는 그를 '용접하는 아니 에르노'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이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의 유명세에 기댄 것뿐, 사실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와는 많이 다르다. 다만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그대로 적고자 했고, 그에 대한 치열한 글쓰기를 하려 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그를 그 자신의 스타일의 글을 쓰는 사람으로 봐주어야 할 듯.
사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전개는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과 비슷하다. 그것이 가장 무난하기도 하고 또 독자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도 아마 고민했을 것이다. 내용은 무겁지만 독자에게는 어렵지 않게 다가가고 싶었을 것. 그러면서도 많은 내용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약간의 과욕은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노동환경, 특히 중소기업의 노동환경에 대해서 막연하게나마 알고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직접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외면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여전히 우리나라의 경제시스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의 말대로 공부를 못 해서, 그저 그런 일들 밖에 할 수 없어서 그런 열악한 환경을 견디고, 저임금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걸까?
사실 그것은 고도성장의 그늘이자 민낯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그동안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특정 재벌의 독식과 정경유착, 하청에 하청으로 이어지는 구조, 결국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의 결과이다. 나아지고 있다고 해도 근본적인 구조는 나아지지 못했고, 오히려 비정규직이 더 많아지면서 차별도 많아졌다.
그가 이 책에서 요구하는 것은 단순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간에 차별을 하지 말고, 정당한 임금을 달라는 것. 이는 비슷한 환경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게 어려울까? 그렇다. 생각보다 어렵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사람들의 마인드부터가 그렇다. 또한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붙는다. 대기업이 하청을 주는 이유, 중소기업 사장이 그렇게 하는 이유,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노조원과 비노조원이 차별을 받는 이유,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런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외국인 노동자가 차별을 받는 이유 등등. 각자의 입장이 있고 서로 대립관계에 있기도 하기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다. 하나의 해결책은 하나의 문제점을 낳는다. 그게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여러 중소기업을 다니면서 겪은 부당함과 차별을 그대로 적어놓았다. 단지 이 책을 읽고 그러한 노동환경과 처우에 대해서 공감을 표시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더군다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에 반향을 일으킬 가능성조차 없다. 그가 이렇게 조명을 받았던 이유도 양승훈 교수를 통한 것이기도 하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조합, 주로 노조라고 말하는 단체에 대해서 반감을 갖는다. '귀족노조'라고 폄하하며 자신들의 이득만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로 치부한다. 노조는 늘 언론의 타깃이 되고,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한 결과다.
이 책에서도 노조에 대한 불만이 드러난다. 노조가 결국엔 정규직인 노동자들의 권리만을 위한 것이고, 그 결과 비정규직에 대해선 차별을 강화시킨다고. 노조가 대다수 노동자들의 현실을 대변하지 못하고 특정인들만을 위한 것으로 변질되어 간다고.
일면 맞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동환경을 개선시켜가는 힘은 노조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비록 욕을 먹을지언정 그렇게라도 해나갈 수밖에 없기도 하다. 누군가는 끌고 나가야 그 뒤를 따라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안 되고, 점차 설자리조차 위협받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저자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그는 현장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현재는 미디어 스타트업에 기자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그의 시각으로 글을 쓸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 이전에 그가 어떤 글을 썼는지는 모른다. 책에 일부 인용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가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가 노동자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알리고, 그 영향력으로 우리 사회가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에는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지만 변화는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다만 그가 과욕을 부려서 포기하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사실 글 쓰는 일을 그만두더라도 다시 현장에 갈 수는 있겠지만 그 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을 테니, 그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계속 써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