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쪽
“내게는 아직도 개구리들의 푸른색과 하늘의 노란색이 보이네. 우리 중 누가 더 장님인가?”ㅡ57p.
지상 위 300미터를 걸을 때 그녀는 가장 편안했다. 1밀리미터의 벗어남도 허락되지 않는 길, 일직선의 앞길.
그것은 운명이었다.
한 걸음씩 내딛는 길.
생의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73ㅡ74p.
소세키 선생은 실명의 깊이 속에서 가장 하얗고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그렸다. ㅡ89p.
“시인은, 진정한 시인은 줄타기 곡예사의 예술을 지니고 있네.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움의 줄을 한 단어 한 단어 걸어가는 것일세. 시의 줄은, 한 작품의 줄은, 한 이야기의 줄은 비단 종이에 누워 있지. 시를 쓴다는 건 한 걸음씩, 한 페이지씩, 책의 길을 걸어가는 일일세.~가장 어려운 건 쉼표에서의 추락이나 마침표에서의 장애와 같이 순간적인 현기증을 주는 것으로 중단되곤 하는 외길을 걷는 일이 아닐세. 시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시쓰기라는 줄 위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일일세. 삶의 매 순간을 꿈의 높이에서 사는 일, 상상의 줄에서 한순간도 내려오지 않는 일일세. 그런 언어의 곡예사가 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