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고 싶은 부분]
- 여성에 관해서
네에주를 처음 소개하는 말이 *젊은 여자*(58p.)라는 것, ‘그것은 소세키의 행복을 위해서였다.’(77p.)라고 하는 것. 진짜 맘에 안 듦.
’ 소세키의 눈에 그녀는 한 편의 시였다. 한 폭의 그림이었고 서예였다. 춤이었고 음악이었다. 그녀는 네에주였다. 눈, 예술의 모든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ㅡ78p.
‘선생과의 우정과 선생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눈 속에서 잃어버린 사랑 때문에 울었다,’ ㅡ113p.
여성이 성녀 아님 창녀로 등장하는 것은 지독한 문학 속 여혐이다.
주인공과 처음 성관계를 나눈 젊은 여성은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았고, 나중에 버려졌다. 오로지 성관계를 위해서, 주인공을 위해서만 인물이 평면적으로 등장한 셈이었다.
반면에 네에주와 봄눈송이는 처음부터 성스럽게 등장한다. 그녀들은 주인공과 선생의 옆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단지 그렇게 순수하고 성스러운 인물로 나온다. 여성에 대한 환상이다. 이 환상이 여혐이다.
[다 읽고 든 생각]
적당한 반전과 인물의 효용은 좋았으나, 여전히 아쉬운 구석이 있다.
전체적으로 여성에 대한 시각을 제외하고서는 시와 같고 눈에 관한 이미지가 ‘순수’하다는 그림은 보기 좋고, 편하다. 하지만 그 이상이 없다는 것도 말해두고자 한다. 눈의 고착화된 이미지를 더 고착화 시키는. 소설 자체가 환상성을 띄고 있다고 평할 수도 있겠다. 로맨스 소설로 분류를 해놓은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