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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된 것을 욕망하는 괴물과 욕망으로 무너진 과학자의 불협화음
프랑켄슈타인은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이다. 초록색 피부, 머리에 박힌 나사와 상처, 기괴한 생김새의 괴물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그 괴물의 첫 등장은 1831년 출간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이다.
소설 프랑켄슈타인과 작가 메리 셸리는 SF 소설의 효시로 여겨진다.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창조된 괴물, 그리고 그 괴물을 '창조한'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의 갈등 구조가 책의 주된 요소이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한 과학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며, 작중에서 괴물은 단지 '괴물(크리처)'로만 지칭된다. 또한, 프랑켄슈타인은 인간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지적 능력 또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괴물은 인간과 함께 살기를 원하며, 인간으로부터의 애정과 사랑을 욕망한다. 하지만 2.5m에 달하는 키, 흉측하고 기괴한 외양을 가진 괴물을 사람들은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괴물은 빅토르에게 자신과 같은 여성 피조물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복수를 꾀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의아했던 부분은, 빅터가 끝내 괴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것에 있다. 처음에, 그는 괴물의 사연을 듣고 계약을 승낙했다. 하지만 끝내 이를 포기하고, 빅토르의 삶은 망가진다. 요구를 거절했을 때 벌어질 일을 뻔히 알면서도 빅토르는 왜 거절했을까? 그 과정에서의 빅토르의 심리는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웠다. 메리 셸리도 이 점을 의식했는지, 책의 말미에 빅토르가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장면을 넣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 대한 행복과 복지를 보장하는 것보다, 동포 인류에 대한 의무가 더 중요했다고 말하며, 끝내 괴물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 정당했다고 평가한다. 나는 빅토르에게서 과학자 오펜하이머를 보았다. 그는 미국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며 핵무기를 개발한다. 그러나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보고 절망하였고, 이후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여 모든 공직에서 쫒겨났다고 한다. 이 두 과학자는 자신의 손으로 세계를 위협하는 괴물을 창조해냈으나, 여전히 그들의 마음은 인류를 향한 애정으로 점철되어있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이 대두되기 100년도 더 전에 집필된 소설에서, 두 과학자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다니!
소설 속 괴물도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이 괴물은 홀로 책을 읽고 지식을 터득하며 웬만한 인간 이상의 교양을 가지고 있다. 성품은 따듯하고, 마음이 여려보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빅토르와 그 주변 인물들의 죽음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그가 순전히 외양때문에 인간에게 배척당한 과정을 관조하자니, 그가 느낄 복수심과 증오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책 마지막에 실린 역자의 해설 속 메리 셸리의 생애를 듣고 난 뒤엔, 이 괴물이 어쩌면 메리 셸리가 자신을 일부 투영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다. 어머니는 죽음, 새어머니의 멸시, 결혼 이후 끊어진 아버지와의 연, 사산아 출산... 메리 셸리의 삶 속, 특히 어린 시절의 가족으로부터의 사랑은 항상 부재했다. 그 때문인지, 프랑켄슈타인과 괴물 모두 소설 내내 평화로운 가정 속에서 애정을 받기를 갈망한다. 그중에서도 괴물은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의 존재로써는 미처 드러내지 못했던 애정에 대한 욕망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 정말 숨죽이며 책을 읽었다. 인물에 대한 다층적이고 탁월한 묘사와,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도록 하는 구성진 플롯, 빠른 전개와 반전은 빨리 다음 장을 읽고 싶게끔 만든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SF 소설이 200년 가까운 시간을 거쳤는데도 여전히 다채롭고 새로웠다. 오히려 그 옛날에 쓰여졌는데도 과학기술에 의한 윤리적 문제에 대해 고찰하게 하는 책이라는 것에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