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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는 메이지가 이은에게 주는 시계를 보면서 흠칫 놀랐다.
이토는 한국 통감으로 부임한 후 서울의 여러 공공건물에 시 계를 설치했다. 건물 정면에 대형 시계를 붙였고, 집무실과 회의 실마다 벽시계를 걸었다. 통감부에 모이는 조선의 대신들은 벽 시계 아래서 통감의 시정연설을 들었다. 이토는 시간이 제국의 공적 재산이라는 인식을 조선 사대부들에게 심어 넣으려 했으 나, 시간의 공공성을 이해시킬 길이 없었다. 이토 자신이 설명의 언어를 갖추지 못하기도 했지만 시간을 계량하고 시간을 사적 내밀성의 영역에서 끌어내 공적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문명개화의 입구라고 설명을 해도 고루한 조선의 고관들은 알아 듣지 못할 것이었다.
짐이 내리는 시간이다. 라고 메이지가 이은에게 말할 때, 이 토는 그 말의 크기를 어린 이은이 감당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지먀, 그렇게 짧게, 간단히 말하는 미카도의 위엄에 숨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