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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남아서 며칠 내내 책을 다시 펼쳐보고 덮고 했다. 경하와 인선이는 어떻게 됐을까 계속 궁금해서. 정심이의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사무쳐서.
이 책이 지극히 사랑에 대한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작가님의 인터뷰를 봤다. 경하의, 인선이의, 정심이의 사랑이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마음에 남았다.
네 생각을 많이 했어.
하도 생각해서 어떤 날엔 꼭 같이 있는 것 같았어.
뒤에도 다시 나오는 이 문장이 유독 생각이 난다. 함께 하기로 한 프로젝트를 혼자 준비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심이 찾으려 한 흔적들을 혼자 되짚어 찾아가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인선에게 '작별하지 않는다'를 완성하는 것은 정심이 남기고 간 흔적과 작별하기 전 마지막 준비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경하에게 아마를 살리는 일은 인선의 영혼을 지켜주는 일처럼 다가왔을까? 아마를 묻어주고 죽음에 다가가는 경하의 모습이 너무 슬펐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경하와 인선이는 서로에게 참 각별했다는 생각이 든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것을 사랑이 아니면 뭐라고 부를까? 아직 사라지지 말라는 경하의 마지막 말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랑 똑같다. 아직 사라지지마..ㅠㅠㅠ
홀로코스트를 다룬 20세기 셔츠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호러스에 대해 말하는 건 결국 더불어 살기 위한 게 아닐까? 나는 그래서 우리가 호러스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맞아. 기억하면서도 계속 살아가려고.
알면서도 계속 행복하려고.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만족하고 생산적으로 살아가려고 말이야.
여기서 '호러스'는 홀로코스트, 그들의 삶을 빼앗아간 학살 같은 행위들을 완곡하게 표현한 단어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런 단어들을 만들어 차마 말하기 힘든 진실을 계속 언급하려고 한다. 내가 이러한 책들을 계속 읽는 것도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말은 누군가에게 전해져야 비로소 '언어'가 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마지막 힘을 내어 전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읽는 것에 그런 의미가 있기를. 책에 기록된 많은 사람들의 증언들. 누군가에겐 현실이었을 정심의 이야기. 그런 것들을 읽고 또 기억하고.. 그렇게 계속 기억하며 계속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