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평론가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으며, 평론가로 일하면서 문예창작에 대한 강의를 했었다. 그리고 현재는 영어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평론이나 문예창작으로 가는 경우는 많지만 영어영문학으로, 그것도 교수까지 가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일 것이다. 그를 부교수로 임용한 서울대에서도 파격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가 그동안 평론가로서 활동해 온 것과 특히 비교문학, 비평이론 등에 탁월했던 것을 보면 납득이 되기도 한다. 특히 국내 시들뿐만 아니라 외국 시들도 번역하는 작업도 했었고, 영문학에도 두각을 드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번역한 시들을 읽어보면 기존의 번역된 시들과는 또 다른, 고심의 흔적들이 많이 느껴지니까.
그런데 나는 그의 평론집이나 작품들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유명하긴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평론 자체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기도 했었고.
하지만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그의 명성에 대한 기대보다는 책의 제목이 주는 궁금함 때문이었다. <인생의 역사>라니, 이거 평론집 아니었나? 게다가 시들의 평론집인데 말이다.
이 책은 원래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던 시평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기고했던 내용을 다듬고, 내용을 추가하고, 부록도 덧붙여서 제법 두툼함 책이 되었다. 그 가운데 대체된 시도 있었다.
시평이라고 했지만 이 책에 대한 소개에서는 '시화'라고 얘기했다. 시에 대한 이야기. 단지 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래서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달책'으로 책을 받고 읽기 시작했을 때, 조금 어려운 듯하면서도 흡입력이 있었다. 한꺼번에 다 읽지는 못했지만 며칠에 걸쳐 짬짬이 다 읽었다. 소개해주는 시 한 편을 읽고, 그에 대한 해설을 읽고 다시 시를 읽었다. 그중엔 그가 처음 번역한 시들도 있다.
소개된 작가는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작품들은 잘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 일부러 그런 작품들을 선정한 것일까 싶기도 했다.
<공무도하가>부터 박준 시인의 작품까지, 고대부터 현대까지, 국내와 외국을 아우르는 그 시간과 공간의 궤적은 이 책의 제목이 왜 <인생의 역사>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시에는 개개인의 인생이 담겨 있다. 그러한 인생은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더 큰 역사가 된다. 그래서 이 책의 역사는 개인의 역사도, 사회의 역사도 모두 담고 있다. 우리가 함께 겪었던 그러한 역사들.
이 책에 소개된 시들은 대체로 아픔이 담겨 있다. 5부로 구성된 내용은 '고통의 각', '사랑의 면', '죽음의 점', '역사의 선', '인생의 원'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부제들이 붙었고, 부록에도 '반복의 묘'라는 부제를 붙였다. 거기에는 죽음과 같은 큰 슬픔도, 헤어짐의 아픔도, 인생의 고독과 고통도 담겨 있다. 그러나 그런 내용들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저자의 문장들에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느낀다. '아, 그런 것이 인생이었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리고 부록으로 담긴 글들에선 작가의 개인적인 성향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그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글들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시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도.
마침 작년을 보내고 올해는 맞이하는 시점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타이밍도 적절했던 것 같다. 매년 새해가 되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니까. 올 한 해도 잘 보내고, 연말쯤 이 책을 다시 읽어보게 된다면 1년 동안 나는 또 어떻게 살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