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의미에서 나는 여전히 타자와의 조우야말로 우리를 가장 결정적으로 변화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믿는다. 레비나 스식으로 분류해본다면 주체가 타자와 만나는 방식은 두 가지일 수 있다. 둘 다 고향을 떠나 타자에게로 가고 있으되, 오디세우스 는 미지의 것을 기지의 것으로 만들며 자기 자신을 확장해 나가는 여행을 하기 때문에 끝까지 자기 자신일 뿐이지만, 난데없 는 신의 명령을 받들어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는 아브라함은 자신이 영원히 알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 있음을 받아들이면서 스 스로 다른 존재가 된다. pp.296
요컨대 세상의 시인들은 누구나 오디세우스와 아브라함 사이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황동규의 최근 시 에잘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거듭남을 가능하게 할 수 도 있을, 살아 있는 타자들이다. pp.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