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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노니아
1. 지난 세기에 소설가 지그몬드 케메니는, 헝가리의 역할은 독일주의와 슬라브주의로 나누고 그중 어느 하나가 우위에 서지 않도록 하면서 합스부르크제국의 다국적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p327)
2.에반스가 썼듯이, 헝가리는 여러 다른 문화가 다양하게 존재했으며 모자이크처럼 그 안에서 여러 통치권이 함께 효력을 발생하며 교차했다. 즉, 합스부르크가 영토이지터기 제국의 주, 트란실바니아 공국이었다. 18세기 말 오스만제국이 점차 물러나면서 오스트리아가 헝가리 전체를 지배했다. 몬테쿠콜리 육군원수는 그의 책 <1677년 헝가리>에서 이렇게 썼다. 헝가리인들은 "잔인하고, 불안하며, 변덕이 심하고, 만족할 줄 모른다. 그들은 스키타이인들과 타타르인들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이 민족들에게서 나왔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열망한다....어느 때는 사랑에 빠졌다가 또 어느때는 증오하고, 금방 기분이 들떠 있다가 금방 우울해하고, 금방 좋다고 했다가 금방 싫다고 하는 프로테우스들이다..."(p328)
3. 1867년의 타협,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군주제를 만들었던 타협은 자신의 상처 즉 헝가리의 분리주의를 훌륭하게 치료한 합스부르크가의 가장 위대한 시도였다.(...)1867년의 타협이 정치경제적으로 헝가리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승리였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330)
4. 바로 헝가리에서, 루카치는 마르크스 주의의 고전 논리를 확인했다. 이 고전 논리에 따르면, 즉각적 자발성은 진정한 것이 아니며 형식의 규제를 통해 비로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스탈린주의는, 형태이자 질서이며 니체의 "원자들의 무정부 상태"에 원칙을 부여하는 것이다. 서양의 자유주의는 미완의 자발성, 비윤리적 생명력, 건성건성한 캐주얼 이기주의, 어떤 윤리적 지표도 고려하지 않느 ㄴ생리적 욕구가 만들어낸 단순 연쇄로 드러났다. 하나의 국가였고, 다른 하나는 사회였다. (334)
5.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다. 빈처럼 자기 스스로 지혜롭게 무대를 꾸밀 줄 알지만, 오스트리아의 라이벌 도시에는 없는 생명력과 튼튼한 본질을 지니고 있다(...)현대의 빈이 큰 대로가 많은 오스만 남작의 파리를 모방했다고 한다면, 부다페스트는 도시 빈의 도시계획을 다시 모방한 셈이다. 모방의 모방이다. 바로 이때문에 부다페스트는 플라톤이 말한 의미에서 시와 닮은 것 같다. 부다페스트의 풍경은 예술보다는, 예술의 의미를 암시한다.(352)
6. 또한 에세이를 장려했다. 왜냐하면 에세이는 즉각적인 것이 얼마나 진실하지 못한 것인지, 삶과 그 의미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인식하는, 지성의 고통스러우면서도 냉소적인 변화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성은, 비록 간접적으로나마 의미의 선험성을 바라본다. 의미란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지만, 의미의 부재를 느끼고 그 의미를 그리워할 때 반짝 나타난다. (352)
7. 이러니의 시에서 말하길, 세상은 낡아빠진 헌 망토다. 같은 시기 트란실바니아의 소설가이며 에세이 작가였던 지기스몬드 케메니가 주장한 바, 소설은 사람들을 환상으로부터 깨워냐야할 책임이 있다.(360)
8. 루카치는 자신의 생물학적 쇠퇴를 살피며 에스키모가 결단을 내릴때와 비슷한 행동으로 무대에서 스스로 사라졌다. 죽음이 가까운 에스키모는 공동체에게 자신이 쓸모없어졌다고 느끼면 이글루에서 나가 죽으러 간다. 루카치가 명석함과 활기를 잃었음을 받아들인 그 상징적 행위는, 자신의 무능력을 이겨낸 것, 자신의 논리적 명철함이 이젠 흐려졌다는 걸 자각할 수 있는 사람이 보여준 극한 지성이었다. 루카치의 마지막 몇 달은 무력한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삶이 도망가는 것을 본 사람의 이 우울함과 감정의 이 파토스가 없는 활기찬 시간이었다.(...)루카치의 젊은 날의 책들은 그의 걸작이며, 정통적이고 세련된 <문제는 리얼리즘이다>나 스탈린주의와의 타협의 표시를 보여주는 교육적인 딱딱한 다른 책들보다 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루카치는 위대하다. 의미가 충만한 통일성 안에서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멜로디가 있는지 젊어서부터 자문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스스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고, 모든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구체적 현실 없이는 삶은 공허한 수사학에 지나지 않음을 인식하면서, 모든 대답에는 모호하고 불면명한 향수를 일으키는 한계가 있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366)
9. 블로흐는 루카치가 자연을, 사물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루카치의 글에서 위한을 얻으려면, 분명 건강 상태가 양호해야 하고 지나친 고통을 겪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 블로흐에게는 어둠을 위한 자리가 있고, 우리가 세상의 잔해요 쓰레기가 된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자리한다.(369)
10. 오디세우스, 성취와 귀향을 꿈꾸는 여행자.(374)
11. 다뉴브 강에 대해 쓰는 것은 쉽지 않다. 몇 년 전 프란츠 툼러가 <다뉴브 강에 대한 명제들>에서 말했듯, 강은 삶의 통일성을 부수고 잘라내는 언어와 명제들을 모른 채 지표없이 유유히 흘러가기 때문이다. 깊은 곳은 조용하다. 요제프가 자신의 서정시에 쓴 말이다. 그 깊은 곳을 말하게 했다가는 그 입속에 지나치게 도드라진 과장된 웅변을 담게 할 위험이 있다.(375)
11. '독일사람들에게는 빈이 있고, 헝가리 사람들에게는 페치가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