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에 도전한 도서 중 가장 애정을 갖고, 가장 마지막까지 (독파 챌린지 종료 1시간 전 쯤) 읽고 생각하고 찾아보면서 읽었던 책이다.
많은 책을 도전해서 이런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대강의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이 좀 아쉽긴 했다. 이 책은 한 챕터마다 배경지식과 조사를 통해서 접근해야 보다 충만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해서, 독파 초기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욕심부리지 말고 류미티스 관절염처럼 달래가며 읽었어야 했다. ^^
'빨간맛' 부터 말하자면, 논픽션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애초에 작가가 사실인지 아닌지 꿈인지 생시인지, 진실은 그 중간 어드메쯤 있다라는 식의 형식을 취하기 위해서 일부러 설계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은 과학도서코너에 가서 비스므레한 책을 집어들 것이기 때문이고 나도 비스므레한 제목을 가진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가지고 있다.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금방 파란맛이 되기도 하는 이유가 되는데, 이 책을 일고 나니 그 책을 다시 집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빨간맛이자 파란맛이 되기도 한다. 빨간 맛은 맵고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것, 파란맛은 그 반대. 이분법적으로 설정하니 좀 유치하긴 하다.
이책의 주제의식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인류의 불행을 예측하지 못한 단순한 호기심, 호기심에 빠지다 보면 광기에 이르게 되는 과학자(또는 예술가). 그래서, 첫 장에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언급이 되었을 것이다. 마침, 독파 프로그램에 프랑켄슈타인이 있어서 함께 읽었던 것은 매우 잘한 일이 되었다. 욕심을 부려 아니, 호기심으로 그저 마음을 따라서 결정한 것이 이번엔 운 좋게 성공한 듯 싶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도 자기가 만든 '것'의 결과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중요 등장인물들도 그런 실수를 한다. 아니 했다. 실제 내가 만나 본 어떤 사람들은 못 먹어도 go를 외치기도 한다. 안 해보면 후회한다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더듬더듬 그렇게라도 계속 가보자는 거다. 작가는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뚜렷하게 제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한다' 정도의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에서 노인이 하는 말을 통해 어느 정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죽음을 앞둔 풍요의 야릇함이라는 말로.
한편, 실제 세계에서는 아마도 파멸을 향해 가는 기차에 승선하는 선택을 할 것 같다. 전쟁은 안돼요, 평화가 좋아요 하면서 지금도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며, 기후변화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소비, 소유욕구를 철회하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의 주인공 인물들은 한계상황까지 자신을 몰아가면서 알고자 하는 맹목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니면, 작가의 상상력인지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서, 무엇을 이야기하는 줄은 알겠는데, 기괴한 장면을 연출하고 강한 언어들을 사용하여 그린 것은 별로 좋은 전략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유명한 수학자였던 '오카기요시'는 천재였던 수학자였고 인생의 말년에는 '나는 자연인이다'가 된 분이다. 수학 외에 만족을 주는 것이 없으므로 그런 상황을 백 번 이해할 수 있다. 그분의 삶과 생각을 담은 책 '수학자의 공부'에서는 그렇게까지 기괴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순한맛 '몰입'이 훨씬 좋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이론이다. 정의를 들으면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런 상태를 가정해볼 수 있고 충분히 이해할 만해. ' 라고 말하지만 본격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안개와 같지 않을까 역시 그 기분을 상상해본다.
그의 이론이 그 당시의 과학자들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시각화되지 않은 것, 단 하나의 원인에 하나의 결과를 가져와야만 편안한 것, 절대적이고 객관성 풍부하고 설명가능한 현상들이 난무하는 세계관에 반기를 든 이론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 자신이 구축해 놓은 세계를 뛰어넘거나 없거나 전혀 반대의 개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어떤 미치거나 천재인 게다가 성실하기까지 한 과학자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았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은 흔하지 않은가?
작가가 인터뷰한 것을 잠깐 보았는데, 소설 속의 내용 정도는 이미 많이 알려진 것이지만 우리는 어떤 생각을 진척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미 잘 알고 있지만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모르는 상태에서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결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던지는 질문도 꽤 묵직하다고 생각한다. 양자 역학, 미시물질세계의 역학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망, 포착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끝내 알아낼 것으로 보이는 전망과 알아낸 후에 올 파멸 등을 생각하면 현실이 소설이고 소설이 현실인 것만 같다.
그렇지만, 난 독파을 끝냈으므로 시원한 맥주 한 사발을 들이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