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책과 만났다. 사실 ‘무수히 많다’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 이 순간 다양한 책들의 제목, 표지, 작가가 머릿속에 떠오르며 생각을 가득 채운다. 물론 어떤 책들은 인사를 나누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그들과는 아직, 만날 시간이 남아 있으니, 언젠가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혹은 그저 인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토록 다양한 기억 중, 가장 흐릿한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조금은 뻔하지만 몇몇 동화책이 떠오른다. 처음으로는 2000년대 전후로 동화 분야에서 널리 이름을 알리신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를 참 즐겨 읽었다. 소위 말해 열풍을 불러 일으켰었다고 생각했던 <강아지똥>뿐만 아니라, <아기소나무와 권정생 동화나라>라는 익숙하고도 반가운 표지의 책을 몇 번이나 넘겨봤는지 모른다. 게다가 어렸을 적에는 몰랐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니, <몽실언니>도 권정생 작가님 작품이었다. 방금 그 사실을 알고 혼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알게 모르게 권정생 작가님의 작품을 다양하게 읽어오며 자랐고, 그때의 기억이 책을 좋아하게 되는 기반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당시 읽던 동화책은 책꽂이에 남아 있지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 당시 이 책들을 다시금 읽어보고 싶다.
더불어 당시에 정말 좋아해서 무척 여러 번 읽었던 4권 시리즈 동화책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 책은 제목이나 작가가 기억나질 않는다. 사계절을 테마로 네 권의 이야기가 이어졌던 것 같은데, 어렴풋한 느낌과 그때의 감정, 흐릿한 표지의 느낌과 일러스트만 떠오르고 도통 제목이 생각나질 않아서 답답하다. 인터넷을 뒤적여봐도 도무지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때 그 책, 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 불현듯이라도 무슨 책이었는지 떠오르면 좋겠다. 어렸을 때는 집에 책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좋아했던 동화들은 두고 두고 읽으면서 책 표지가 닳을 때까지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다니, 세월의 힘이 참 무섭구나 싶다.
끝으로 <아가똥 별똥>이라는 시집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시 한 편을 암송했어야 했다. 아마도 학교에서 숙제로 각자 좋아하는 시를 한 편씩 외워와 학급에서 암송하며 발표하지 않았을까 싶다. (혹은 조금 더 큰 대회였던 것 같기도 한데 이제는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가 않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부터 달을 참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지금도 종종 하늘에 뜬 달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일부러 달과 관련된 무언가를 찾아보기도 하는 등 달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도 ‘초승달’이라는 시를 암송했는데, 참 신기하게도 그때 외운 그 시가 아직도 입가에 맴돈다. 물론 이제는 내 기억이 정확한지 확신할 수 없고,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시인 이름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그립고 새로운 마음으로 맨 아래에 슬쩍 적어둬본다. 이 시집은 집안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 찾아봐야겠다.) 언어 공부는 어린 시절에 하는 게 좋다던데, 실제로 어렸을 때 외운 무언가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닌가보다. 그 시집도 참 좋아해서 여러 시를 많이 읽었는데, 지금은 시가 왜 이리도 어려운지 모르겠다. 그때의 그 마음으로, 순수하게 다시 시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초승달> 서재환
얄미운 새앙쥐가 하늘에도 사나봐요.
낮에는 숨었다가 밤만 되면 야금야금.
둥그런 달 다 갉아먹고 손톱만큼 남았어요.
너무 흔하고 지루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되새겨볼 수 있어서, 무척 새롭다. 동화책과 동시를 좋아하던 작은 아이가 지금은 이렇게 컸다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20년 후에 과거를 회상하며 그간 읽어온 책을 되새겨보면 또 어떤 마음이 들까 싶다. 이번 챌린지 덕분에 좋은 추억이 또 하나 쌓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