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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 죽음을 앞둔 돼지들, 각자 다른 목소리로 외치고 있지만, 나는 그 소리를 뭉뚱그려 한 단어로 말할 수밖에 없다. 비명. 돼지의 비명. 각자 다른 말을 하고 있지만, 나는 그 소리를 뭉뚱그려 한 단어로 말할 수밖에 없다. 절규. 돼지의 절규. 조금 더 최선을 다해 말해본다면. 돼지의 비명과 절규. 그보다 더 최선을 다해 말해본다면. 한 마리 돼지의 비명과 절규. 오직 단 한 마리 돼지의 비명과 절규. 그러나 그렇게 한 마리 한 마리의 비명과 절규에 귀기울이기에는 돼지가 너무 많다. 돼지는 너무 많다. 돼지, 돼지, 돼지, 돼지는 계속 돼지, 계속. 돼지. 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되고. 돼지는 돼지일 뿐. 돼지와 돼지는 구분되지 않는다. 돼지는 돼지일 뿐, 오직 단 한 마리의 돼지가 되지 못하고. 비명이라는 한마디 말 속에 파묻힌 무수한 목소리들. 절규 속에 파묻힌 구체적인 말들. 깊은 흙구덩이 속에 파묻힌 목숨. 침묵. 기어코 침묵.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와 말들은 매장된다. 기어코 매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