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쪽
일요일 아침 9시 책을 펴며 빠르게 읽을 수 있을거란 생각은 했지만 앉아서 3시간만에 완독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마지막 10페이지 정도를 남기고는 잔잔한 감동에 눈물을 흘린 오랜만에 감동적인 책이었다.
힘든 일이 있을때 꼭 다시 한번 꺼내서 읽어볼 만한 책..
-51p.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마음이 힘들어도 시간은 칙칙폭폭 앞으로 나아갔다. 아침, 점심, 저녁이 지나면 밤이 왔고 또다시 하루가 시작됐다. 학교생활이 이어지고 친구를 만나고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겪다 보니 어느 틈에 나는 내 처지에 적응해 버렸다. 내 처지에 맞는 미래를 계획하게 됐고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을 터득했다.
-117p. 나는 초등학교 정문 앞에 서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평평하고 넓은 운동장을 바라보는데 까닭 없이 마음이 편안했다. 앞으로의 삶은 저 운동장처럼 평평했으면 했다. 나의 삶이나 할아버지의 삶이나 연우의 삶도 큰 굴곡 없이 평탄했으면 했다. 큰 욕심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프지 않고 돈에 쪼들리지 않고 적당한 공간을 깨끗하게 관리하며 살고 싶었다.
-206~207p. “그 정도면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것보다 더 독한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더라. 일단 우리는 전쟁은 겪고 있지 않잖아. 지독한 곳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내가 겪은 일로 죽어 버리겠다고 말하기는 나는 좀 그래. 하지만 유리아.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은 각각 다른 것 같더라. 감당해 낼 여건도 다르고. 설령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거야.”
-208p. “있잖아. 유리야.” 나는 백미러에 비친 선생님의 서글서글한 눈을 바라보았다. “너무 힘들 때는 웃으려고 애써 봐.” “네?” “힘들 때 웃는 거, 효과가 상당해. 이거 경험담이야.”
-238p. 할아버지는 나를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나는 풋고추를 아작아작 소리가 나도록 씹었다. 그날의 식탁이 좋았다. 뚝배기에 담긴 추어탕과 맑게 붉은 깍두기와 재핏가루의 향과 우리의 짧은 대화를 나는 마음에 담아 두었다. 나를 쳐다보고 피식 웃고 말았던 할아버지의 표정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았다. 내가 처음 만들어 드렸던 된장찌개를 맛본 할아버지의 모습처럼. 어쩌면 평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