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소설은 없었다. 에너지에 휩쓸린다.”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 선장작
19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떠오르다-
'지금까지 이런 소설은 없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 『고래』를 읽고 나서 느낀 점이다. 고래처럼 너무나 거대한 스케일과 장황한 시간 속 서사를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여전히 감동과 충격이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온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글을 써야할지 모를 정도로 너무나 거대하고 장구한 서사이다. 만약 이번에 이 책이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의 진정한 가치와 엄청난 감동을 알지 못한 채, 책장 속 먼지와 나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을 것이다. 19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이 작품을 만나서 읽어보게 된 것에 감사한다. 아울러 이런 작품이야말로 부커상 수상을 받아야하는 건 아닐까 나혼자라도 그 가치를 재평가하면서 부커상 수상 불발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본다. 정말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정말 스펙터클하고,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뭐라고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엄마인 '금복'이와 딸인 '춘희'의 모질고 기구한 삶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 두 모녀가 어떻게 인생을 살았는지, 어떻게 질기고 질긴 목숨을 잃고, 수많은 포기와 좌절, 고난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그 기나긴 삶의 시간을 견디고 살았는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정말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 '날 것 그대로의 삶', 동물과도 같은 본능적이고 생존을 위한 삶, 그 러나 그 속에 담긴 여러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 탐욕, 인간의 성적 욕망과 추구 등 우리가 살면서 만나고 겪을 모든 삶의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이 삶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사상누각처럼 결국 허물어지고 무너지고 마는 인간의 삶의 모습도 보게 된다.
더 이상 이것만큼 '비참하고 기구한 삶은 없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엄마인 금복과 딸 춘희의 삶은 너무나 처참하고 기구하다. 인간의 생명력은 질기고 질긴 것이고, 인생 끝까지 다 살아봐야 안다는 말처럼 다양한 인생사를 보여준다.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신 혼자의 힘으로 삶을 개척하고 삶을 살아가는 두 모녀의 모습은 어쩌면 금복의 벽돌 공장 주변, 평대역 철도역 주변에 핀 '개망초'와 비슷해보인다. 척박하고 낯선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개망초처럼 그들은 자신의 버림받은 삶 속에서, 척박하고 낯선 땅에서도 뿌리를 내린다.
특히 엄마인 금복이의 삶은 그야말로 '놀랍고 충격적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끊임없이 이어질 정도로 파란만장한 삶 그 자체를 보여준다. '원더우먼'처럼 특별한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성적 매력과 뛰어난 임기응변력과 행운으로 금복은 버려지고 소외받던 한 소녀에서 조그맣고 볼품없던 도시인 평대를 경제적으로 일으킨 사업가가 된다. 물론 그녀가 그렇게 성공하기까지 기구하고 처참한 인생의 시행착오가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정말 그녀의 삶은 스펙터클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1부, 2부까지 금복의 삶은 이어진다. 금복이가 결국 그녀의 가장 좋아했던 고래를 닮은 그 극장에서 화재로 죽기까지는 말이다. 수많은 남자들을 유혹하며 자신이 가진 여자로서의 성적 매력을 통해 살아남고, 다방, 벽돌공장, 운수업, 극장까지 다양한 사업을 펼쳤던 성공한 사업가인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금복이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작품 속에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적 정체성이 변화되는 것 또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엄마인 금복의 삶이 파란만장했다면 딸인 춘희의 삶은 너무나 기구하다. 더이상 춘희의 삶보다 끔찍하게 비참하고 처절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엄마인 금복이에게 한 번도 안겨보지도 못하고, 출생조차 축복받지 못하고 억척스럽고 질기고 질긴 삶을 산 춘희, 이름은 ' Girl of Spring' 이지만 정말 봄과 같은 화사함과 축복을 받지 못하고 평생을 벙어리인채, 사랑조차 받지 못한채 그렇게 어둠과 고독 속에서 살아간 것 같다. 왜 이렇게 춘희는 비참하고 처절하게 살아야만 했을까. 엄마인 금복이의 삶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보여준다고 한다면 춘희의 삶은 인간의 슬픔, 고통, 절망, 고독 등 인생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는 법이거늘 춘희의 삶은 왜 항상 음지였을까.
어쩌면 금복과 춘희의 삶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다 국밥집 노파의 저주 때문일까. 이 모든 비극을 계획하고 만든 노파의 빅픽처인 것일까. 노파의 저주를 왜 모두춘희가 받아야 했을까. 엄마인 금복이의 업보를 딸인 춘희가 모두 다 받았던 것일까. 하지만 그에 앞서 평생 악착같이 돈만 모으다가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은 노파의 기구하고 처절한 삶을 생각해볼 때 이해가능하기도 하다. 과연 이 모든 비극은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이 책 3부에 이어지는 춘희의 삶의 모습 속에서 과연 인간의 삶은 무엇일까.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춘희의 삶 속에서 우리는 짐승과 같은 날것 그대로인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 또한 우리의 인생의 모습이지 않을까.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 책 속에서는 수많은 법칙들이 등장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적용이 되고 필요한 법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다양한 법칙들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법칙들이 금복과 춘희, 노파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적용이 된다. 이 책에 언급된 법칙들 중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운명의 법칙 113쪽, 습관의 법칙 119쪽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120쪽, 작살의 법칙, 121쪽, 세상의 법칙 129쪽, 이념의 법칙 129쪽, 거지의 법칙 130쪽, 흥행업의 법칙 136쪽, 구라의 법칙, 140쪽, 진화의 법칙 147쪽, 관청의 법칙, 172쪽, 유언비어의 법칙, 202쪽. 구호의 법칙, 205쪽, 만용의 법칙, 209쪽
19년의 시간을 거슬러 나에게 온 이 책! 비록 부커상 수상이 불발이 되서 너무나 아쉽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파도처럼, 고래처럼 거대하게 밀려오는 감동을 느끼고 아 직품의 훌륭한 가치를 깨닫게 되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영문판으로 나온 <고래>도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