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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베를린 서가의 주인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나를 M***이라고 불러달라고, 이제부터 나는 단지 이름뿐 아니라 목소리와 영혼 그리고 지나갔으며 앞으로 도래할 경험까지도 전부 M***이라고, 왜냐하면 나는 오래전부터 M***의 속삭임으로 이루어지는 소설을 쓰고 있는데, 스스로 그 목소리의 미디엄이 되어야 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M***이라고 불려야 한다고, 실제 소리의 울림으로 그 존재를 완성해달라고, 그러니 나를 M***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나는 아름답거나 감동적이거나 스며들거나 지적이거나 훌륭하거나 압도적인 글을 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좋은 글이나 기억에 남는 글을 쓰기를 원하지 않으며, 개념과 철학으로 쓰기를 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체와 통일과 조화의 글도 원하지 않는다고, 나는 연속성과 이야기의 문법을 피해 가기를 원하며, 구조와 플롯의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나는 그 무엇도, 심지어 내용이나 아름다움조차도 완성하거나 구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모든 것은 파편이었다, 단지 속삭임, 몸 없이 환하고 불완전한 사물과 같은, 하지만 속삭이는 사물인, 혹은 모순되고 파편적인 몸을 가진 소리, 하나의 물방울이 돌 위로 떨어질 때 비로소 풀려나는 광물의 속삭임, 동굴의 한숨인 속삭임, 먼 훗날 어느 날 네가 희고 커다란 다리 위에 서 있을 때, 저녁이고 햇살이 강물 위로 산산이 흩어지는 순간에, 너는 혼자인데, 문득 네 귀에, 네 입에, 네 몸안으로 동시에 덮쳐오는 파도처럼 사납게 속삭이는 여러 겹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느끼고, 놀란 얼굴을 돌려 방금 누군가 네 곁을 스쳐지나간 것은 아닌지 헛되이 확인하려 할 때, 멀리 다리 건너편, 석탄처럼 불그스름하게 이글거리는 인파 속으로 막 사라지는 M***의 뒷모습이 보였다고 믿는, 그런 글을 쓰기를 원한다고, 과거도 미래도 아닌 글을, 진실도 거짓도 아닌 글을, 일어났으면서 일어나지 않았던 것에 관하여, 먼 훗날 어느 날의 흰 다리, 그곳을 지나갔을 M***을 시간을 앞서서 선취하는 글쓰기를 원한다고. 그러니 나는 이제 M***이여야 한다고, M***을 부르는 목소리가 없으면, M***도 없으므로, 우리를 앞서서 가버릴 것들, 뒤돌아보지 않을 것들, 우리가 가진 넝마를 다 팔아버린 이후에도 아무도 모르게 우리의 낡은 외투 안에서 이글거릴 것들을 쓰길 원한다고. 다리 저편의 M***처럼, 저녁빛 속에서 테두리가 일그러진 채 일렁이며 멀어져갈 몸 없는 그것을 쓰기 위하여 나는 몸이 필요하다고, 그러니 나를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