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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을 읽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담장이 있는 정원’까지는 낯선 이름과 지명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산동네’가 시작되어도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다만 묘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늘 함께했다. 아지즈 아저씨 가게가 혁명의 진원지일 거라는, 아지즈 아저씨에게 뭔가 큰 비밀이 숨어 있어, 놀라운 반전이 나타나리라는! 그러나 끝내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비밀도, 반전도 없었다.
그런데도 배신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카라반 행렬이 이어지며 다양한 인물들과 삶이 레이어드 되면서 동아프리카가 어렴풋이 그려졌다. 그제야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다. 아마도 <낙원>이 읽기 어려웠던 것은 아랍계 동아프리카인이, 그들의 삶이 매우 낯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낯설음을 연민과 감동으로 바꾼 것은 구르나의 표현이다.
그것은 몸통과 열매가 삶의 빠르기만큼이나 탄탄하고 풍성한 다산의 나무라고 했다. 63쪽
그들은 피곤한 한숨과 만족스러운 신음 소리를 냈다. 110쪽
“그의 결정은 그가 지혜로운 통치자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의 판단은 공정하지 않다고 전해라.”217쪽
그는 대기가 따뜻해지고 짐이 아직 그들에게 무겁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 아침 중반까지 기다렸다. 228쪽
음지 함다니는 잠시 기다려 얼굴의 긴장된 근육이 풀어지게 했다. 291쪽
일상의 묘사가 낯설고 새로워 문장을 여러 번 읽으면서 복숭아, 아침, 한숨, 긴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 <낙원>을 읽는 재미였다.
구르나는 자신과 자신의 고향 사람들이 잊히는 것을 결단코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프리카 대륙의 아름다움과 그곳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소설로 썼을 것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그의 염원은 이루어졌다. 작가의 책을 읽으며 우리는 동아프리카의 다양한 문화를 알게 되었고, 동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을 연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