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쪽
빛을 향해 나아가자고 속삭이는 너, ≪빛을 걷으면 빛≫
마음이 꿉꿉한 날이었다. 발걸음을 돌려 2층 카페로 향했다. 통 유리창이 활짝 열려있는 자리에 앉았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올려다 본 하늘은 마냥 파랬다. 이럴 땐, 일기예보가 틀렸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핸드폰을 켜고 이리저리 화면을 넘겨보다가 불쑥 생각났다. 그래, 성해나 작가의 블로그에 가보자!
무선 이어폰을 끼고, 귓가를 맴도는 보컬 융진의 노래를 들으며 작가의 블로그를 열었다. 페이지를 넘기고 넘긴 뒤, 소설 '오즈'를 찾아냈다.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알고 있는 소설이었는데, 전문이 올라와 있길래 조만간 읽겠다고 별렀던 차였다. 그게 오늘이 될 줄이야. 푹신한 소파에 느슨하게 몸을 뉘고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갔다.
정말로 열심히 마음을 고르며 읽었던 듯하다. 아니, 고를 수 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오즈라 불리고 싶었던 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고 마음을 연 하라. 소설의 끝까지 다 읽고 나자, 희한하게 꿉꿉했던 마음이 다시 보송보송해졌다. 마치 맑고 따스한 날, 빨랫줄에서 잘 마른 듯한 보드라운 담요처럼.
그 후로 성해나 작가를 알고 싶은 마음에 틈만 나면 검색했고, 최근에 낸 소설집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바로 인터넷 서점에 들러서 주문했다.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 ≪빛을 걷으면 빛≫, 문학동네에서 준비한 ≪New Face Book≫ 인터뷰 집까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다.
며칠 후에 택배가 도착했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빛을 걷으면 빛≫책을 열어 목차를 훑었다. 제목들을 가만히 살피면서 아무래도 오늘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아껴뒀다가 내가 여유로울 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목차만 봐도 느껴지는 작가의 감성이 너무 좋아서, 빨리 후다닥 읽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난 그날 밤, 책장 맨 앞에 성해나 작가의 책들을 꽂았다. 읽을 날만 기다리겠다고 두 손을 불끈 쥐면서.
그 밤, ≪빛을 걷으면 빛≫을 꺼냈다. 표지 그림부터 마음에 들었다. 첫 페이지를 열고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즈처럼, 내게 감동을 줄 작가의 이야기가 일곱 편이나 더 실린 책이었다. 마음이 슬며시 따듯해졌다. 그렇게 책을 펼쳤다.
<언두> "너도 내가 돼봐."
도호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유수의 코를 가볍게 쥐었다 놓는 모습이 단숨에 그려졌다. 도호의 말 한 마디는 그렇게 마음을 울렸다. 그 말이 도호의 마음이라서, 그게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그래서 난 도호와 유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모자라고 서투른 이해일지라도.
<화양극장> "어때요? 그렇게 뻔하진 않죠?" 밝은 결말을 이야기해주던 그녀의 목소리와 부드러운 미소, 끄덕임을.
마지막에 경이 떠올린 이목의 말 한마디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연한 어른의 섬세한 배려다. 이런 어른이 필요했던 시간을 지나 이젠 내가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해 준 이야기였다. 나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경의 마음이었다.
"네, 요즘 애들이 다 그래요."
소설 속 나도 결국 따라서 말한다. 그런데 어금니에 낀 고기가 빠질 듯 빠지지 않는다. 나는 베테랑이니까, 세대 차이를 인정하기까지 하니까, 나는 다르고 싶다는 나의 생각은 그야말로 똘레랑스이지 않을까?
<괸당> 왜 우리는 누군가에겐 관대하면서도 누군가에겐 한없이 매정해질 수밖에 없는지를.
보현의 관점이 느껴져서 오히려 더 좋았던 이야기였다. 그가 이쪽과 저쪽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려 했다는 것. 결과적으로 어떤 것도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이지만, 적어도 보현만큼은 달라졌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건, 나 뿐일까.
<소돔의 친밀한 혈육들> 어쩔 수 없죠. 규정대로 할 수밖에. 캔커피 통에 담뱃재를 턴 뒤, 차장을 등지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편이 더 경제적이잖아요. 마지막에 하려던 말은 끝까지 침묵한 채로.
나라는 사람은 어찌 보면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오수의 부탁을 들어줬을 때나, 지금이나.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결국 삼킨다. 그런데 그게 이해가 간다. 그게 옳은 이해인지는 모르겠으나, 침묵한다는 것조차도 이해가 간다.
<당춘> 그렇게 열심히 안 하셔도 돼요. 응? 왜? 애써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요.
이 말 뒤에 결말이 어떻게 될지 굉장히 궁금했던 소설이었다. 삼촌도, 해조 할머니도, 길례 할머니도, 규채 할아버지도, 헌진도, 두루도 모두 다. 그런데 좋았다. 결말이 정말 좋았다. 미리 추천하자면, 인물들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말투와 주고받는 대화는 압권.
<오즈> 구름이 지나갈 때마다 방은 어두워졌다 다시 밝아졌다. 어느새 가는 실선 하나가 복사뼈에 새겨졌다. 니들이 지나간 자리를 나는 손등으로 조심스럽게 쓸었다. 반듯하지도, 깔끔하지도 않은 실선. 선이 어떤 문양으로 이어질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김일성이 죽던 해> 웃는 엄마에게 나는 머뭇대다 말한다. 엄마 딸이잖아. 단단한 어금니로 길게 이어진 사과 껍질을 씹는다. 누구도 먹지 않는 그것을 아삭아삭아삭.
이 엔딩을 처음 읽었을 땐, 그저 따뜻한 마음이 든 게 전부였다. 그런데 오늘 다시 읽어보니, 소설 속 나는 엄마를 참 많이 사랑하는 아이란 걸 아주 속 깊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와 닿았다. 그렇게 엄마를 이해하려 했던 과정을 나 역시 알고 있으니까.
≪빛을 걷으면 빛≫을 읽고 나서 문득 든 생각은 소설 집의 목차가 마치 셋리스트 같다는 것. 셋리스트는 공연을 하기 위해 계획하는 노래 순서를 말하는데, 이게 사실 어떻게 보면 아티스트가 주어진 공연 시간을 지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목차를 훑어 보고 소설들을 한 번 더 정리하면서 그때 조금 알게 된 듯하다. 작가가 목차를 이렇게 정리한 이유를. 물론,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독자인 내가 느낄 때, 목차대로 소설을 쭉 읽으면 느껴지는 것은.
바로 통로다. 통로의 시작은 빛에서 어둠으로, 어둠을 한참 달리다가 다시 빛을 맞이하는 데에 그 역할이 있다. 목차를 따라가 보면, 그 궤적이 느껴진다. 어디까지나 독자로서의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그 순서에 따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결국 작가가 바라는 빛이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빛의 모습은 아주 평범하고 오히려 단순하기까지 하나, 그 속에 깃든 의미는 각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그려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제일 중요한 건, 아마도 나 혼자가 아닌 서로라는 관계다. 이 관계의 영향을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만의 세계관으로 그려낸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은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말을 아주 따스하게 건넨다. 나로 출발해, 너를 향하고, 끝은 우리가 되는 것. 그게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관계의 의미가 아닐까?
아주 좋은 이야기들을 읽었다. 늦은 밤부터 새벽녘까지 읽은 ≪빛을 걷으면 빛≫은 책을 덮고 나서도 보드랍고 먹먹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편견과 오해를 넘어서 다정한 이해를 고민하고 노력하는 이야기를 자신만의 인물들로 보여준 성해나 작가를 만나게 된 그날이. 이젠 내 책장에 성해나 작가의 책들이 꽂힐 일만 남았다. 그래서 감히 바라고 또 바란다. 작가의 말처럼 이 생에서 건강히 살아가고, 사랑하고, 써주시기를.
당신의 이야기를 소중히 읽겠습니다. 다정한 햇살 아래서 빛을 만끽할 수 있게, 반드시 꼭 지금처럼 이야기를 들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