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도시의 다른 이름은 친구라 하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우연히 걷는 봄 산책 중 문득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옆의 친구는 창피하다는 듯 흘긋거리다가 이내 따라부른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우리에게 익숙한 이 노래는 가사의 첫 구절 덕인지 유독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때 자주 부르곤 했다. (그리고 느린 템포의 발걸음에 어울린달까) 끝까지 가사를 읊어보면 실은 혼자 걷는다는 이야기임에도.
『짝 없는 여자와 도시』는 비비언 고닉 표 ‘산책의 글쓰기’이다. 산책과 글쓰기. 이 둘이 얼마나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지는 워즈워스, 보들레르, 벤야민, 루소, 발저가 명징히 증명해주었다. 심지어 걷기 자체에 주목하는 에세이로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예찬』, 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걷기의 책’을 묻는다면 가장 먼저 『짝 없는 여자와 도시』를 건네고 싶다. 책 속에는 고닉 표 걷기의 사유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 우정이 있다. 도시에서 시절 인연을 겪으며 살아가는 나는 뉴욕의 거리에서 쓰인 이 책에 깊게 공명했다. 단 하나의 짝, 영혼의 반쪽, 평생의 동행을 기대하지 않아도 꿋꿋이 자신을 버티게 할 사람들이 고닉의 글 속에서 나란히 걷고 있다. 결국 혼자가 될지언정 경쾌하게 함께 부를 수 있는 산울림의 노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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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웨스트사이드는 예술가와 지식인이 득실대는 공동주택이 기다란 직사각형처럼 모여 있는 곳으로, 그런 풍요가 맞은편 이스트사이드에는 돈과 사회적 지위로 비춰지며 이 도시를 화려하고도 고통스러우리만치 짜릿한 곳으로 만들었다. 나는 거기서 세상의 맛을, 진짜 세상의 맛을 알았다.” _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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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닉에게 이스트사이드가 있다면 나에겐 서울이 있다. 콕 집어 말하자면 마포구와 용산구, 세상의 맛을 알게 한 곳. 나 또한 그 지역을 살고 걸었던 시간을 은근하게 자부한다. 자부심의 이유는 내가 겪은 풍경과 친구의 기억에서 발생한다. 친구라 함은, 어쩌면 사랑하게 되어버린 사람. 거리에서, 가게에서, 서로의 삶에 강렬한 스파크를 남기고 간 사람. 풍경과 친구는 분리되지 않은 장면으로 각인된다. 마음속에 못으로 박아 걸어둔 내 인생의 또 다른 얼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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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에마와 나의 우정은 로맨틱한 사랑과 놀라우리만치 닮아 있었다.” _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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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엔 상수를 자주 걸었다. 합정역부터 이어지는 골목길을 올라 이리카페부터 제비다방을 지나는 거리를. 적막한 밤을 울리는 발걸음 소리와 드문드문 불 켜진 창의 노란 빛이 좋아, 큰 연유 없이 맴도는 날이 많았다. 대부분 친구와 함께였다. 친구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매번 다르게 하는 재능이 있다. 무엇이 아름다운지, 얼마나 원하는지, 어느 순간에 자긍심을 느끼는지에 대해서. 친구 중 한 명은 사진을 찍고 작품으로서의 옷을 만들고 싶어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서 만들어낸 이미지를 기반으로 사업적인 성공을 얻고자 한다. 널리 이름을 알린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각자만의 세련된 작업을 본인만의 명징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친구들이다. 상수의 이리카페 앞을 지날 땐 늘 떠올리는 기억이 있다. 우린 한 친구가 만들고 있는 사진집의 페이지 순서를 맞추어 본 적이 있다. 다른 테이블에는 토론하는 사람들, 시집을 읽는 사람들, 노트북으로 작업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난 그곳에 언제나 생의 열기가 있다고 느꼈다.
마포구에서 비교적 집값이 저렴한 일산으로 옮겨와 산 지 두 해 만에 다시 서울 시세를 알아보는 요즘이다. 함께 걷는 친구들, 우린 늘 말하곤 한다. 어디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다고. 초록과 멀어지니 병원과 가까워지는 게 아니겠냐며. 어깨를 거칠게 부대끼는 거리, 서울이기에 더욱 가속되는 경쟁의 압박에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말한다. 하지만 우린 결코 서울을 떠나지 않거나, 결국 서울로 돌아온다. 아직 우리가 풀고 싶은 문제는 이 복잡다단한 서울에 있기에. 우리가 옳다고 믿는 아름다움은 대중의 문화를 진단하며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지는 과열된 논박의 자리에서 피어오른다.
서울의 삶은 어쩌면 중독적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원하는 바가 있는, 무언가 해내고 싶은 사람들이 이 도시에 있다. 카페에서 나온 우리는 밤의 상수를 한가롭게 걷는다. 모두가 말이 없어지는 한순간, 고요 속에서 다리엔 피로가 납처럼 들러붙고 낮의 지하철에서 마주친 얼굴을 애틋한 전생처럼 떠올린다. 어떤 친구는 담배를 끊었다고 하고, 또 다른 친구는 지금 가면 4년 뒤에 돌아올 거라 하고, 한 친구는 혼자 강변을 걷다가 들어가겠다고 말한 뒤 마치 모르는 뒷모습처럼 멀어진다.
『짝 없는 여자와 도시』는 내가 나로 존재하게 한 도시,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의 얼굴을 더듬어보게 하는 책이다.
“1940년대에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인 찰스 레즈니코프는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의 거리를 거닐었다. 그는 결혼도 했고 정부기관에서 일한 데다 문학계에 친구들도 있었으므로 은둔자는 아니었지만, 내면의 침묵에서 길어 올린 작품의 또렷함이 워낙 빛나고 날카로웠던 까닭에, 독자로선 그가 거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기만의 인류애를 상기시켜줄 것들을 찾아 방황하고 다녔다는 걸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일깨워줄 무언가가 필요해서 그러고 있다는 걸. (...) 고립을 가로질러 서로를 발견하는 인간들의 드라마가 거리에 선 레즈니코프 앞에 끊임없이 펼쳐진다.” _48P
비비언 고닉은 『짝 없는 여자와 도시』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로서, 회고록 작가로서, 어떤 풍경과 사람을 지나쳐왔는지 특유의 치밀한 기억력으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일견 냉정한 듯 보이는 고닉의 사유 속엔 분명한 연민과 애정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많이 걷고 싶고, 친구를 만나고 싶고, 쓰고 싶어진다. 리뷰를 마치며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덧붙인다. 고닉에게 그의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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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도자기 화병 두 개가 보이더군요. 충동적으로 하나를 꺼냈어요. 저들은 다 가졌는데 나는 아무것도 없잖아, 이거 하나쯤 뭐 어때? (...) 뭐에 홀렸었는지, 당신네들 물건인 이걸 왜 내가 갖고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이제 와 용서를 구할 처지는 못 되지만 이렇게 돌려보낸다고요. 몇 주 뒤에 그 집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제가 보낸 그 이상한 편지를 받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더군요. 그러고나서 웬 소포가 왔는데 뭔가가 산산조각 난 파편이 가득 들어 있었다는 거예요. 제가 훔쳐 나왔다가 이제 와서 돌려보낸 그 물건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_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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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난 후 돌려준 화병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그 형체가 파괴되었다. 훔쳐온 아름다움은 죄책감이 되었나. 이따금 내가 이미 늦었을지, 인생에서 뭔가 해 보일 수 있는 중요한 시기를 그저 놓쳐버린 건 아닐지 불안해진다. 우린 불안해한다. 여전히 꿈을 꾸고, 꿈의 파편을 이 도시에 남겨둔다. 나의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결국 부서진다 한들 내가 전부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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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이라는 영토를 힘겹게 횡단하다 국경이 맞닿는 곳에서 이따금 만나 서로에게 정찰 기록을 건네는 고독한 두 여행자다.” _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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